수원주보 2019년 4월 7일자 3면 복음단상 깊이 읽기
“간음하다”의 의미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이사 43,19).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하시고자 하는 ‘새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한마디로 ‘율법의 완성’입니다. 그리고 이 율법의 완성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간음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성경에서 간음은 철저히 금지됩니다(탈출 20,14; 신명 5,18; 예레 7,9; 말라 3,5). 우선, 율법적인 의미로 간음은 결혼한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깨뜨리는 행위입니다(레위 20,10; 신명 22,22-24). 이는 혼인의 신성함을 지키려는 율법입니다(히브 13,4). 한편, 영적인 의미로 간음은 하느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사실 성경을 살펴보면, 하느님의 사랑을 저버려서 관계를 파괴한 ‘간음 사건’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요한 8,3-5) 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윤리적’인 질문을 던지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영적’으로 대답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 이 말씀은 ‘영적으로 간음한 이들이 진짜 누구인가?’ 라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욕망에 눈이 어두워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호세 2,7; 4,10; 예레 5,7; 에제 23,43-45; 이사 57,3). 예수님은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에 대한 불신으로, 즉 그들이 추구하는 이념의 욕망에 빠졌기 때문에, 그들에게 영적으로 간음하는 이들이라고 꾸짖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간음하다.” 라는 의미는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배반하여 신앙을 잊어버리는 것, 그리고 자신들이 만든 우상으로 예수님을 시험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글. 이수완 로마노(하상신학원 외래교수, 영성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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