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이사 2,4)
지금 한반도의 하늘에는 증오와 미움의 먹구름이 어느 때보다도 무겁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그 먹구름이 무력 분쟁이라는 폭우로 변할까 많은 이들이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하늘에서는 서로를 적대하는 전단과 오물 풍선이 난무하고 있으며, 휴전선 접경 지역 마을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는 확성기 소리에 불편과 불안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전쟁 중인 러시아에 북한군이 ‘파병’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우크라이나에 대한 우리 정부의 무기 지원에 세상이 걱정하고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이렇게 높아지는 한반도의 긴장을 예의 주시하고 이 땅에서 무력 충돌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이 호소문을 발표합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평화’의 의미와 그 가르침을 다시금 되새겨야 합니다. 남북이 함께 평화롭게 지내려면 물리적인 힘을 앞세워 상대를 굴복시키려 하기보다 상호 간에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내야 합니다. 증오와 대결의 악순환을 멈추고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현재의 대결 국면을 해소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남북은 그동안 수많은 위기를 겪어 왔지만, 슬기롭게 극복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작은 변화로도 지금의 긴장을 낮추고 무력 충돌을 방지할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남북의 지도자와 정치인, 그리고 정책 결정자들에게 호소합니다. 바싹 마른 들판에서는 작은 불씨 하나도 큰 불길로 번질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지금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남북의 상황을 우려합니다. 국가의 첫 번째 임무는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지도자들은 전쟁의 참극이 일으키는 고통을 바로 자기 자신의 일로 여겨야 합니다. 남과 북 모두 위협을 당장 멈추고 군사적 긴장을 낮추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특히 새롭게 뽑히는 미국 지도자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남과 북 사이에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고 대화가 복원될 수 있도록 미국을 포함한 한반도 관련국들의 외교적 노력이 절실합니다.
아울러 평화의 사명을 지닌 신앙인과 공동선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호소합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목전에서 비오 12세 교황께서 “평화로는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전쟁으로는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평화로 가는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해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군사적 충돌은 피해야 합니다. 정치 지도자들이 평화적인 방법을 선택하도록 우리 모두 촉구합시다.
이 시간에도 지속되고 있는 전쟁은 가난하고 약한 이들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 주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이스라엘과 중동의 전쟁 속에서 선량한 시민들이 크나큰 피해와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지금 평화를 희망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는 결코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이 희망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넘어서는 용기를 주며, 갈등의 순간에도 사랑과 화해의 길을 선택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성심께서 전쟁의 상처를 치유해 주시고, 평화를 세워 우리를 정의롭고 형제애 가득한 세상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니(「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Dilexit Nos), 220항 참조) 한반도와 전 세계에 진정한 화합과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평화의 여정으로 나아가는 길을 선택합시다. 진정한 평화를 위해 우리는 간절히 호소하며 기도합니다.
2024년 11월 5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김 주 영 주 교
위원 조 환 길 대주교
옥 현 진 대주교
정 순 택 대주교
손 희 송 주 교
박 현 동 아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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