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산시 선부동 갈릴레아 아기방
△ 경기 안산시 갈릴레아 아기방 김현숙 원장과 자원봉사자 노정자씨, 아기 엄마인 필리핀 노동자 테스, 자원봉사자 최혜숙씨(왼쪽부터)가 필리핀 이주노동자 자녀인 아기들을 안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보육문제도 큰 짐 아기들 눈망울 보면 가슴 아파요”
“아유! 통통하던 브리트니가
며칠 아프고 나더니 살이 쏙 빠졌네. 아가야, 너 필리핀으로 돌아가는 줄 알고 할머니가 오늘 부리나케 왔잖니….” 지난 10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선부3동 1124번지 반지하에 자리잡은 갈릴레아 아기방. 유난히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아기 둘이 자원봉사 할머니의 품에 안겨 방긋거리며
옹알이를 한다. 다른 셋은 바닥에서 새근거리며 잠들어 있다. 모두 생후 일곱달 미만인 이 천사 다섯은 부근에 사는 필리핀 이주노동자 부부들의
자녀다. 부모가 아침일찍 일하러 나갔다가 밤늦게 집에 돌아오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아기방 원장 김현숙(42)씨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보낸다.
“한국 아기들하고 똑같아요. 아니 눈망울이 너무나 커서 한국 아기들보다 더 예뻐요. 일주일에 한번 보고 나면 사흘 동안은 아기의
눈망울이 계속 아른거린다니까요.”
매주 한번씩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노정자(65)씨와 최혜숙(47)씨는 이날 브리트니와 저스틴, 크리스찬이 이번주에 필리핀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듣고 하루 앞당겨 아기들을 돌보러 왔다. 우는 아이 달래기, 목욕시키기, 기저귀 갈아주기, 우유 먹이기 등 아기 돌보는 데는 ‘선수’지만, 사랑이 없다면 하루종일 저렇게 업고 안아주고 놀아줄 수는 없다.
갈릴레아 아기방은 천주교 수원교구 외국인노동자 상담소에서 지난 9월 이주 외국인 노동자 자녀들의 보육을 위해 문을 열었다. 독지가의 도움으로 23평의 반지하 전세방을 싼값에 얻은 게 가장 큰 힘이 됐다. 상담소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해온 김씨가 원장을 맡고, 성당의 신부들과 몇몇 개인후원자들이 한푼씩 보내준 돈으로 유아용품 등 살림살이를 장만해 갔다. 아침 7시께부터 밤 10시까지 자원봉사자 20여명이 돌아가며 김씨와 함께 아기를 돌보기로 했다. 소문을 들은 이웃과 가톨릭 교인들이 분유며 기저귀 등을 보내주기도 했다.
시화·반월공단이 가까이 있는 이곳 안산시 원곡동·선부동 일대에는 최소 3천여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살고 있다. 필리핀·베트남·타이·인도네시아 등 출신국도 다양하다. 대개 자동차 부품공장이나 염색공장 등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 중엔 한국에서 아이를 낳은 젊은 신혼부부들도 요즘 많이 늘었다. 하지만 아기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일을 그만두거나, 눈물을 삼키며 아기를 자기 나라로 보내야 했다. 젖도 떼지 않은 아기만 보내놓고 이국땅에 남은 이들 부부들에겐 아이에 대한 그리움이 고된 노동과 차별보다 더 큰 아픔이다.
“아기만 비행기에 태워 보내놓은 뒤 일하다 말고 아이가 보고 싶다며 엉엉 우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아요. 이곳에 아기를 맡기게 된 엄마·아빠는 그나마 다행인 거죠.”
갈릴레아 아기방은 생후 18개월 정도 아기들까지만 돌봐주고 있다. 이곳에 아기를 맡긴 외국인 노동자 부부는 그때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 있지만 아기가 좀 더 크면 또다시 보육문제 때문에 걱정에 빠질 수밖에 없다. 갈릴레아의 맏이와 막내 레이마트·크리스찬의 부모는 최근 외국인 고용허가제 실시를 앞두고 공장에서 해고된 뒤, 결국 아기를 필리핀에 사는 가족들에게 데려다주고 오기로 결정했다. 지난 3월에 태어났다가 이곳에 머물렀던 제이슨은 이미 지난달 말 필리핀에 보내져 자원봉사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김씨와 자원봉사자들은 아기들을 좀더 많이 받아 돌봐주고 싶지만, 아직 재정이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다. 23평짜리 반지하방도 맘에 걸린다. 충분한 여유도 없으면서 아기들만 받아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정부·민간 차원에서 동남아 같은 제3세계에 여러가지 원조를 실시하고 있죠. 그것도 물론 좋지만,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생활에 먼저 관심을 돌리는 건 어떨까요”
(031)403-8412.
한겨레 신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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