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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3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12-01 조회수 : 484

 [대림 제1주일] 
 
복음: 마르 13,33-37: 조심해서 항상 깨어있어라. 
 
대림이란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이전의 모든 기다림의 시간을 말한다. 넓은 의미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나는 그 순간까지를 대림 시기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대림을 잘 준비한다는 것은, 그분의 진리에, 그분의 초대에, 그분의 부르심에 그리고 매 순간 그분의 메시지에 대한 완전한 개방을 말한다. 그러기 때문에 대림은 우리 신앙의 본질적인 구성요소이다. 오늘 전례에서 대림의 의미가 잘 표현되고 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하느님 구원의 새로운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즉 하느님이 개입하시지 않으면 이스라엘은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구원될 수 없으며, 더구나 그 스스로는 구원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63,16-17; 64,1 참조). 여기서 이스라엘은 회개하여 마음의 치유를 받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이스라엘의 불충실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임재는 변화를 일으키신다. 하느님의 오심은 구원을 위한 것이다. 구원적 도래라고 할 수 있다. 성탄을 잘 준비하는 의미가 이것이다. 우리가 성탄에 다시 태어나지 못하면,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다는 표지가 되고 말 것이다. 
 
예수께서는 먼저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32절) 하시고, 깨어있도록 초대하신다. 깨어있음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항상 준비하고 있을 수 있다. 오늘 복음이 강조하는 것은 무엇보다 깨어있어야 할 의무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여기서 깨어있음의 개념은 세 번(33.35.37절) 분명하게 표현되고 있고, 문지기에게는 깨어있으라고 분부한(34절) 데서 한 번 더 표현되고 있다. 이것은 마태 25,14-30의 달란트의 비유와 루카 19,12-27의 미나의 비유에서 더 발전된 것이다. 그러면서도 더 예리하게 기다림의 분위기를 강조하고 있다. 집주인의 돌아옴은 불확정적이어서 갑작스레 들이닥치리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네 번에 걸쳐 깨어 기다림을 상기시킨다. 그때가 저녁, 한밤중, 닭이 울 때, 이른 아침으로 표현하고 있다. 주님의 오심의 이러한 불확실성에 근거한 깨어 기다림은 모든 신자에게 정신을 차려 깨어있어야 할 책임성 있는 태도를 가르쳐 터득게 한다. 책임 있게 깨어 기다리는 것은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 미래를 꿈꾸는 묵시적 열광이라든지 현실에 대한 무감각이나 도피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진정 하느님의 뜻에 완전히 우리 자신을 개방하고 받아들여 실천하는 삶을 의미한다. 그래서 언제라도 들이닥칠 수 있는 주인에게 문을 열어줄 수 있는 깨어있는 자세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한 삶이어야 함을 말해 준다. 
 
바오로 사도는 주님의 도래에 대한 주제를 다시 취하여 삶의 모든 순간에 확대하여 적용하고 있다. 주님께서 실제로 오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오심을 항상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순간순간이 그분께 대한 신뢰와 사랑을 드리는 만남의 시간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에게 베풀어주신 은총의 선물들이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우리가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으로 주님의 심판 날을 맞이한다는 것은 우리가 그분의 은총의 빛 안에 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를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영광된 왕국에서 결합해줄 그 친교는(1코린 1,9 참조)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즉 매일 매일 계속해서 작은 도래, 임재가 선행되지 않으면 그 위대한 마지막 도래는 절대로 오지 않을 것이다. 
 
주님을 맞이하는 것은 어느 때고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결정적으로 주님을 만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날과 그 시간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정적인 만남을 잘하기 위해서는 매일 매일 순간순간의 삶을 통하여 자신을 죽이는 삶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죽는다는 것은 그 순간마다 주님을 만나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그 만남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항상 깨어있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순간순간의 삶을 통하여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을 때, 우리는 결정적인 만남, 우리의 죽음 혹은 주님의 재림도 기쁘게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삶을 계속 살 수 있도록 깨어있도록 하여야 한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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