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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12-01 조회수 : 909

루카 21, 34-36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영국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가 쓴 시 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시가 있습니다.
황량하고 거친 산속에 살고 있는 새 한마리가 어느 날 들에 나갔다가 폭풍을 만났습니다.
그 새는 자기의 둥지를 떠나지 않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해서 그 산을 향해 날아가려고 발버둥 쳤습니다. 
자기가 태어나 살고 있는 산을 떠나면 죽을 만 같아서 안간힘을 썼으나 그것은 허사였습니다. 
 
폭풍을 이기고 날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 새는 폭풍이 부는 대로 자기의 몸을
맡기고 그 방향으로 날기 시작했습니다. 
강한 폭풍을 따라 한참 날아갔습니다.
드디어 폭풍도 약해졌습니다. 
그런데 그 새의 눈앞에는 푸른 초장과 멋진 수풀의 아름다운 산이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과거에 자기가 살던 거친 수풀의 산과는 비교가 안 되는 훌륭한 수풀과 산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복음을 읽어보면 세상의 종말에 관한 내용입니다.
세상 종말이 어떻게 한 해의 시작과 어울릴 수 있는 복음이 될까요?
사실 하느님은 우리를 새로운 땅으로 초대하실 때, ‘고난의 역풍’을 이용하십니다.
왜냐하면 이전 것에 질리고 싫증나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좀처럼 찾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윌리엄 워즈워드의 시에서의 그 새도 이겨내기 힘든 역풍이 아니었다면 그 황량한 땅이 가장 좋은 것인 줄 알고 결코 거기를 떠나지 않으려 했을 것입니다.
그 역풍에 몸을 맡기면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1959년에 세상을 떠난 우장춘 박사는 우리나라의 국보일 뿐 아니라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학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렸을 때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는 고아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일본 사람들이 사는 일본 동경의 고아원에서 자라나야 했습니다. 
 
일본 아이들은 이 불쌍하고 나이 어린 우장춘 소년을 마구 못살게 굴었습니다.
그러나 이 소년은 자기책상 앞에 밟히면서라도 「피어나는 민들레같이」라고 써 붙이어 마치 자기를 일본인들이 자꾸 짓밟아주는 민들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민들레가 반드시 피어오르듯 자기도 꼭 성공할 날이 있을 것이라 믿고 노력하였습니다.
이런 큰 뜻을 가지고 자라난 우장춘 소년은 세계적인 농학박사가 되고야 말았습니다. 
 
어쩌면 내가 세상에 짓밟히고 있다고 느낄 때, 그 때가 국경을 넘어야 할 때이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 때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싫증이 나야 더 나은 세상으로 발걸음을 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세상에 속해있을 때는 사제가 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사실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저를 부르시고 계셨음을 지금은 알지만, 살아오면서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결혼하고 돈 벌고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를 세상 밖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던 것이 ‘하느님이시오,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란
그리스도의 생애를 담은 10권짜리 책입니다.
그것을 5년 동안 읽고 났더니 복학해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는데, 더 이상 강의를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저를 역겹게 만들었습니다. 
 
경영학을 했는데 이전과는 다르게 더 이상 돈 때문에 좌지우지 되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 때서야 땅에서 눈을 떼고 하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를 부르시고 계신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들으려 하지 않았던 바로 그 부르심이었습니다. 
 
오늘 저희 성당에서는 개신교 목사님, 광주지역 노회장까지 하시다가 천주교로 개종하신 김재중 요셉 형제님의 대림피정 강의가 있습니다. 
 
그 분이 젊으셨을 때 최연소 노회장(천주교로 치면 주교님과 비슷한 위치라고 합니다)을 하시며
박정희 대통령보다 연봉이 높아서 당시 1억 원을 넘게 받았다고 합니다.
그분이 성모님을 그렇게 싫어하다가 성모님에게 오히려 한 방 맞으셔서 그 성모님을 미워하게 만들었던 개신교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역풍은 대단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고 개신교에서는 개종을 하자 모든 돈을 다 끊어버려서 몇 년 동안 거지처럼 사셔야 했고 굶는 날도 허다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마리아론을 전공한 저까지도 배울 것이 많을 정도로 성모님에 대한 박사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천주교 신학교에서도 마리아론이 사라져가는 이때에 여러 지역을 다니시며 많은 좋은 강의로 성모님에 대한 신심을 고취시키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태어날 때 그 기쁜 소식을 천사들이 알렸습니다.
천사들이 하늘에서 우렁찬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 노래를 들은 사람들은 고작 목동들 몇 명뿐이었습니다. 
 
왜 베들레헴에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은 그 찬미의 노래를 듣지 못했을까요?
그들은 세상에 심취해 있어서 눈을 하늘로 들어 올릴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마냥 세상이 재미있었던 것입니다. 
 
학생이 창문 밖을 보며 딴 생각을 하면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혹은 마치 구걸하는 장님이 동전 바구니를 들고 지하철 안을 돌아다니는데 모두가 스마트폰에 집중해 머리를 숙이고 그 사람에겐 관심을 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또 세상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느님은 하늘에 별을 뜨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 별을 본 사람들은 동방박사들 세 명밖에는 없었습니다. 
 
왜 수많은 사람들이 그 밝고 새로운 별을 보지 못했을까요?
하늘을 향해 머리를 들 여유도 없고 또 관심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이 세상에 싫증을 느끼고 새로운 무언가를 찾으려 했던 그 세 명만이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행복했던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아기 예수님을 경배했던 이들이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있을까요?
그것은 김재중 요셉 형제님에게 물어보아도 똑같을 것입니다.
그런 역경을 통해 새로운 세상으로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은 절대 자신이 전에 살던 곳을 그리워하지 않습니다. 
 
아마 요셉 형제님도 굶어죽으면 죽었지 다시 이전으로는 돌아가기를 원치 않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이 행복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도 신학교 들어온 이후로 다시 세상을 바라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국경을 넘는 고통은 정말 쉽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대학 교수가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남편은 알코올 중독자로 가구를 내다 팔아 술을 마시고, 술 마실 돈이 없으면 아내를 두들겨 팬다.
거기다가 그 아내는 폐결핵에 걸려 콜록거린다. 
그들은 셋방살이 형편이다.
그런데 아내가 임신을 했다. 여러분에게 묻겠는데, 이 임신된 태아를 어떻게 해야 할까?” 
 
학생 하나가 재빠르게 손을 들고 일어서서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낙태시켜야 합니다.”
대학 교수가 말했습니다. 
“자네는 방금 베토벤을 죽였네!” 
 
베토벤을 낳은 어머니는 베토벤이 어렸을 때 지병인 폐결핵으로 죽었습니다.
그는 11살 때부터 극장을 돌며 구걸 예술을 해야만 했습니다.
거기다가 그는 서른 살 때 음악가의 생명인 귀를 잃었습니다. 
 
이런 역경 덕분에 그의 음악은 강한 주제를 지니고 있으며 대부분 끝부분에 가서는 환희를 노래합니다.
고통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고백대로 “괴로움을 뚫고 나가서 기쁨을 발견”한 것입니다. 
 
베토벤의 전기를 읽어보면 그는 나이가 들고 성공할수록 깊은 신앙의 세계에 빠졌다고 합니다. 
신앙이 그를 모든 파괴적이고 체념적인 불행의 조건에서 구출하여 높은 경지로 인도한 것입니다. 
 
고난은 불행과 동의어가 아닙니다.
오히려 고난은 신앙과 만날 때 가치와 행복의 어머니가 됩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역경을 통해 (이전과 같으면서도) 또 다른 새로운 형태의 육체를 지니고 부활하셨습니다. 
그 순결한 몸으로 아버지께 가실 수 있으셨습니다. 
 
베토벤이 자신의 장엄미사곡의 악보에 남긴 메모는 그가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기도’라는 이름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희망을 잃지 않았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마음으로부터 나와서 마음으로 전달되어야 한다.
신은 모든 것을 지배한다. 
신은 결코 나를 버리지 않았다.
내적인 평화와 외적인 평화를 위하여 기도를 드려야 한다.
기도! 기도! 기도를 드려야만 한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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