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루카 19.9-14
그때에 9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11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 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13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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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부모님께서 친한 친구로부터 자녀에 대한 조기 교육이 중요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들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인 7살 때 스케이팅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것입니다. 1년이 지나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겨우 스케이트 날로 서 있을 뿐입니다. 결국 다른 운동을 시켰습니다. 이번에는 축구입니다. 그런데 공만 보면 피하기만 할 뿐, 신나게 달리기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어린이를 본다면 어떤 아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아마 대부분 운동신경이 부족한 아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아이는 성장해서 크로스컨트리 국가대표가 되었습니다. 단지 스케이트와 축구만 못할 뿐이었습니다. 사실 운동 종목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운동 중에서 두 종류의 운동을 잘하지 못한다고 운동신경이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판단은 늘 이런 식이었습니다. 몇 가지의 모습만 보고서 ‘그가 틀렸다, 맞았다’라고 정의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 단 하나의 모습만 보고서 ‘그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단정 지어서도 안 됩니다.
사람들은 저를 보고서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남들 앞에 서는 것을 좋아하고, 또 대화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면서 단정 짓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외향적인 성격만 있지 않습니다. 혼자 있는 것도 좋아하고, 침묵 속에서 묵상하는 것을 너무나 즐깁니다. 이 모습을 보면 제게는 내향적인 성격도 분명히 있습니다.
함부로 판단하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됩니다. 몇 개의 모습으로 전체를 판단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사람들은 세리를 향해 ‘죄인’이라면서 손가락질했습니다. 동족에게서 세금을 징수해서 당시에 점령국이었던 로마에 전해주던 세금을 징수하는 사람이 세리입니다. 당시 로마는 이 세리를 도급제로 권한을 부여했기 때문에 일정액의 세금만 바치면 자기 멋대로 금액을 정해서 많은 세금을 거두어도 묵인했습니다. 그래서 더 뭇 백성의 원성을 샀었지요. 그러나 그들이 모두 구원에서 제외되었을까요?
그렇지 않음을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 분명히 보여주십니다. 스스로 죄가 없다면서 이상한 감사 기도를 바치는 바리사이보다 자신을 낮추면서 죄인임을 고백하는 세리가 더 의롭다고 말씀하십니다.
함부로 판단하고 단정 짓는 사람이 바로 겸손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모범으로 보여주신 모습은 자신을 낮추어 모두를 받아들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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