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25,31-46
고통받는 이들 안에 계신 주님께서 우리 인생을 다시금 활짝 꽃피어나게 해줄 것입니다!
근원적 결핍과 근본적 나약함을 지닌 우리이기에 이 땅 위에 두 발을 딛고 사는 이상 다양한 고통 앞에 직면하게 됩니다.
때로 그 고통의 강도가 너무 세서 울부짖습니다.
‘지금 내가 이렇게 혹독한 환난 중에 앉아 있는데, 이렇게 참혹한 곤경에 빠져있는데, 주님께서는 대체 어디 계시는 건가요?
대체 계시기나 한건가요?’
작게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오늘 우리뿐만 아니라 위대한 성인 성녀들께서도 자주 심각한 주님 부재 체험으로 힘겨워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양과 염소’ 관련 비유 말씀은 때때로 주님께서 아니 계신 듯하여 괴로워하는 우리에게
좋은 힌트 하나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임마누엘 하느님, 우리 인간과 언제나 함께 계시는 분, 우리와 나란히 길을 걸어가시는 분, 우리와 똑같은 얼굴을 지니신 분, 우리와 똑같이 고통을 겪으시고 상처를 입으시는 주님이십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마태오 복음 25장 35~36절)
따지고 보니 그토록 뵙기 힘들었던 주님께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숨어 계셨습니다.
우리네 인생 여정 도처에 현존해 계셨습니다.
우리가 용기를 내서 무료급식소 봉사를 가면, 그곳에서 굶주리고 계신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시간을 내서 가출청소년 쉼터에 간식이라도 사서 가면, 그곳에서 지독한 외로움에 떨고 있는 주님을 뵐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연민 가득한 마음을 안고 병실을 찾으면 그곳에서 너무 아파서 신음 중인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꽤나 부담스럽지만 씩씩하게 교도소 높은 담장 안으로 들어가면 그곳에서 답답해하시는
주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상 생활 내내 다양한 결핍과 고통 속에 허덕이며 살아간다 할지라도, 우리보다 더 힘겹게 살아가는 동료 인간을 향해 지속적으로 시선을 돌릴 일입니다.
‘내코가 석자’인데! 라는 자괴감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런 우리의 작지만 한결같은 이웃사랑의 실천은 그토록 우리를 괴롭히던 고통에서 벗어날 힘을 선물로 줄 것입니다.
아이러니한 일이겠지만,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이 큰 고통은 우리보다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이웃들을 향한 우리들의 사심 없는 봉사를 통해 서서히 치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고통의 자리에 우리가 그토록 뵙고 싶어했던 주님께서 현존해 계시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니 우리가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치유하고 구원해주는 것이 아니라 고통받는 이들이 우리를 도와주고 치유하고 구원해주는 것입니다.
그 주님께서 우리를 고무하고 격려하시며, 우리에게 다시금 시작할 힘과 용기를 주실 것입니다.
결국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 안에 계신 주님께서 우리 삶에 생기를 더해줄 것이며 우리 인생을 다시금 활짝 꽃피어나게 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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