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한자를 살펴보십시오. 사람 인(人)과 사이 간(間)의 조합입니다. 사람은 혼자서는 인간이 될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사람이 둘 이상 모여 그사이에 공간이 형성되어야 비로소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 공간이 너무 떨어지면 외롭고, 이 공간이 너무 밀착되면 숨이 막힙니다.
적절한 거리감이 중요합니다. 무관심은 사이 공간을 떨어지게 하는 것이고, 사소한 것 하나까지 간섭하면 숨 막혀 죽을 상황을 만들고 맙니다. 인정과 지지만이 적절한 거리감 형성에 도움을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사랑’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사랑한다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지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이름으로 거절, 부정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자녀에게 “절대 안 된다”라면서 그럴 바에는 집에서 나가라고 소리치는 부모의 외침에 적당한 간격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다 너를 위한 것”이라는 부모의 말을 무조건 따르라고 말한다면, 숨 막히는 간격이 아닐까요?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황금률의 기초이며, 참 인간으로 사는 길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원칙을 따르셨음을 오늘 복음에서 봅니다. 예수님께서 도착하시자 그 지방 사람들이 알아보고는 동네방네 소식을 알리고 병자들을 앓고 있는 상태 그대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옷자락만이라도 만질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하지요. 너무 사람이 많아 일일이 손을 얹어 주시거나, 한 사람 한 사람 축복해 주실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를 통해 중요한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병의 치유가 예수님의 관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자기네들 스스로가 믿음을 가지고 했던 행동(옷자락에 손을 대는 일)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갑곶성지에도 예수님의 발등을 잡고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알려지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미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대한 믿음을 표현했기 때문에 바람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해주시는 분은 아닙니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해주시기도 한다는 점에 기대어 보면 어떨까요? 진짜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내게 꼭 필요한 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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