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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27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01-27 조회수 : 951

미국의 작가이자 소설가인 오 헨리는 사람들에게 늘 친절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친구와 함께 가게에서 간식거리를 샀습니다. 그런데 계산해주는 점원이 너무나 불친절한 것입니다. 계산하는 물건을 함부로 대하고, 계산하면서도 계속 구시렁구시렁하고, 무엇보다 남은 잔돈을 던지듯이 주는 것입니다. 친구는 이 점원을 보면서 무척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항상 친절한 헨리지만, 이 점원에게는 화를 낼 수밖에 없을 거야.’

이런 그의 예상과 달리, 오 헨리는 밝게 웃으면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며 가게를 나서는 것입니다. 친구는 물었습니다.

“자네는 그 직원이 그렇게 불친절한데도 왜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나?”

오 헨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합니다. 

“그 사람 기분에 나까지 휘둘릴 필요는 없지.”

우리는 상대방의 기분이 휘둘리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상대방이 화를 내면 나도 화를 내고, 상대방이 웃으면 나 역시 웃습니다. 그런데 좋은 감정이야 전달되면 좋지만, 나쁜 감정까지 굳이 전달받을 필요가 있을까요? 그래서 주님께서 어떻게든 사랑하라고 말씀해주셨던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남의 감정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좋은 감정 안에 늘 머무르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등불의 비유를 보면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여기서 등불은 비유적으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가지고 오신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그러니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이 오신 것을 함지로 가리거나 침상 밑에 놓아 숨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라고 하십니다. 심판 날에 모든 비밀이 명명백백히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모두 알려지기에는 시기가 아직 이르고 적절치 않아서 많은 사람에게 가려져 있지만 결국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역할은 분명합니다. 

주님을 세상에 알리는 데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하며, 동시에 생활 속에서 주님의 뜻인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실천은 남에게만 좋은 일이 아닙니다.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지요. 주님께서 알아주시기에 더 많은 것을 받게 됩니다. 

하느님께 마음을 여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주님을 세상에 알리는 것, 그리고 주님의 사랑을 세상에 실천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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