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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4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10-04 조회수 : 791

고등학교 친구 중에 수학을 무척 잘하는 친구가 기억납니다. 그런데 이 친구를 기억하는 이유는 보통 수학을 잘하면 다른 과목도 잘하는데, 이 친구는 딱 수학만 잘하는 경우였지요. 다른 과목의 성적은 아주 형편없는 특이한 친구였습니다. 그래서 “너는 왜 수학만 잘해?”라고 물어보았습니다. 이 질문에 친구는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중학생 때 수학 선생님을 너무 좋아했어.”

수학 선생님을 좋아하다 보니 수학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그래서 수학 공부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수학 성적도 올랐던 것이지요. 그런데 다른 과목의 선생님은 무조건 혼내고 몽둥이를 들어서 너무 싫었답니다. 자연스럽게 자신을 혼내는 선생님의 과목에는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좋아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실제로 좋아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은 이 세상에 더 큰 가치를 만듭니다. 주님에 대해서는 더 그렇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관심을 두게 되고, 주님을 알기 위해서 더 노력할 것입니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주님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면서 더 큰 가치를 만들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사랑을 가장 강조하시고 중요한 계명이라고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율법 교사가 예수님께 영원한 생명을 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그리고 그 답은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었습니다. 이 사랑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덧붙여 ‘사랑’에 관한 가르침을 보충합니다. 제자들이 어떻게 모든 이의 이웃이 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율법 교사는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당시의 유다인들에게 ‘누가 나의 이웃인가?’라는 문제는 명확했습니다. ‘이웃’은 자기들 사이에 거주하는 이방인들을 뺀 모든 동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이웃’이란 이방인이건 이단자이건 다른 이들에게 사랑으로 다가가는 모든 사람을 일컫습니다. 그래서 이제 율법 교사의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고 물음은 옳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사랑의 대상으로 우리의 이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그의 질문은 이렇게 되었어야 합니다. 

“나는 어떻게 모든 사람의 이웃이 될 수 있는가?”

우리의 사랑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사랑해야 더 높은 가치를 만들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느님 사랑이야 이견이 없지만, 이웃 사랑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습니다. 특별한 이웃만을 나의 이웃으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모든 사람의 이웃이 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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