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이 답답한 마음에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부님! 나쁜 사람 되기 참 쉬운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인가 했습니다. 그 사연은 이렇습니다.
친한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정치 이야기가 나왔고, 어느 정당이 싫다고 말했더니 “나쁜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변에 같이 있던 사람들도 자신을 나쁜 사람 보듯이 보더라는 것입니다.
이분의 말씀에 큰 공감이 되었습니다. 이 사회를 보면 아군 적군으로 나눠서 사는 커다란 전쟁터처럼 보일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진보와 보수라는 이름으로 나눠진 그 모습에서 함께 사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민주주의 사회에 산다고 말합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자신의 자유와 의지를 지키는 동시에 타인의 자유와 의지도 존중하는 것이 아닐까요?
다름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너무나 이기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다름이 있기에 함께 사는 것이지, 다름이 없다면 무엇 하러 함께 살겠습니까? 그냥 자기 맘 편하게 혼자 사는 것이 낫겠지요.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사람들이 정말로 많았습니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 중에서도 있었음을 오늘 복음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모습은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 보여줬던 모습과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를 따르던 제자들도 자기 영광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로지 하느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는 데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부귀영화하고는 정반대의 길에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지금 병으로 아파하는 사람들, 마귀에 사로잡혀 힘들어하는 사람들과 함께해야만 했습니다.
말씀이 듣기 거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그 말씀을 따르기가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삶에서 하느님을 제외하게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 수 없었습니다. 결코 올바른 삶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도 베드로처럼 주님께 이런 기도를 바쳐야 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이런 기도를 통해서 올바른 삶,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게 됩니다.
공지사항 한 가지 말씀드립니다. 제 아버지(조남중 베드로)께서 어제 오후 8시 47분에 하느님의 품으로 선종하셨습니다. 제 아버지의 천상영복을 위해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가족장으로 조용히 진행하려고 합니다. 따라서 기도로만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참, 장례를 치루기 때문에, 새벽 묵상 글은 내일 없다는 말씀드립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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