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제 바로 위의 형과 방을 같이 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잘 때에도 하나의 요와 하나의 이불을 같이 사용해만 했습니다(당시에는 침대를 쓰는 사람이 거의 없을 때였습니다). 둘이 덮고 자기에 충분한 크기의 이불이었지만, 잠버릇이 험한 저이기에 형과 같이 덮어야 하는 이불을 저 혼자 독차지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추워서 웅크리고 자는 형을 보기도 했지요.
그렇다면 누구의 잘못일까요? 이불을 같이 덮게 한 부모님의 잘못일까요? 아닙니다. 이불을 혼자 독차지한 저의 잘못입니다.
세상에는 어렵고 힘든 사람이 정말로 많습니다. 고통과 시련 안에서 힘들어하는 사람을 보면서, 하느님의 침묵에 관해 이야기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미 다 주신 것이 아니었을까요? 혼자 독차지 하는 마음으로 다른 이에게 어려움과 힘듦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주님의 침묵을 이야기하기보다, 내가 실천하지 못한 사랑을 떠올려봐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사랑 자체이신 예수님을 볼 수 있는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좋은 말씀으로 늦게까지 그들과 함께하십니다. 얼마나 피곤하셨을까요? 제자들도 피곤했나 봅니다. 그래서 이런 말로써 예수님께 ‘이제 좀 쉽시다.’라는 표현을 하지요.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지났습니다. 그러니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게 하십시오.”(마태 14,15)
그러나 예수님은 그냥 보내지 못하시지요.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또다시 사랑의 실천을 하십니다. 그 사랑의 실천은 빵의 기적으로 이어집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역시 이런 사랑의 본성을 간직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고서 당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을 제대로 따르고 있었을까요? 사랑의 힘을 믿지 못하면서 사랑할 수 없는 이유를 만드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예수님의 사랑 실천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남자만 오천 명가량 되는 엄청난 군중을 배불리 먹게 하십니다. 즉, 이 모습은 우리 역시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커다란 열매를 맺는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작은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도저히 이루지 못할 것 같은 일들이 가능해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기적을 잘 체험하지 못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대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순수한 사랑이 아닌, 이기적인 사랑, 보상을 바라는 사랑을 하고 있어서, 그만큼 기적 체험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주님을 닮아야 합니다. 주님을 닮은 사람들이 많아질 때, 비로소 이 세상은 많은 기적으로 충만해지는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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