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선물
[말씀]
■ 제1독서(탈출 16,2-4.12-15)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한 기나긴 여정 속에서, 히브리인들은 굶주림으로부터 자신들을 구해 준 예기치 못한 선물을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임과 아울러, 늘 기대 속에 그려왔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대한 예표로 인식한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이 하느님의 선물이 진정 무엇을 예시하고자 하는지를 깨닫지 못한다. 하느님께서 당신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인간에게서 기대하시는 바를 모두 이해하기 위해서는 좀 더 긴 여정이 필요하며 성령의 비추심이 절실하다.
■ 제2독서(에페 4,17.20-24)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풍요로운 구원계획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자 애쓴 다음, 사도 바오로는 에페소 공동체 구성원들이 각자의 고유 사명에 응답할 것을 독려한다. 이를 위해서 구성원들은 가장 기본적인 인간적 욕구를 벗어버리고 이를 내적으로 새롭게 승화시켜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이 되어 오로지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복음(요한 6,24-35)
복음저자 요한은 빵의 기적을 목격했을 뿐만 아니라 기적의 빵을 나누어 먹었던 사람들이 아직도 그리스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밝힌다. 그들은 단지 그리스도를 기적의 능력을 갖춘 자 정도로 평가하고서 그 능력을 되풀이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으나, 그리스도는 바로 당신 자신인 사랑의 현실을 내다보며 살아갈 것을 가르치신다.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만이 하느님의 가장 큰 선물은 바로 그리스도 그분, 하느님의 선성을 드러내 보이시는 그분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 곧 하느님의 선물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신앙으로 충만하게 산다는 것을 가리킨다.
[새김]
■ 선물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사랑으로 정성을 다해 마련한 선물의 의미가 선물을 받은 상대방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면, 이 얼마나 실망스러운 일이겠는가? 선물을 받은 사람은 선물에 대해 평가할 수 있고 감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물 자체보다는 그 선물을 준비하면서 쏟은 정성과 사랑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실망을 넘어 하나의 고통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양자가 동일한 영적 세계에 몸담고 있지 않으니 그 골은 그만큼 깊을 수밖에 없다. 선물을 주시는 하느님과 받는 우리의 관계는 어떠할까?
■ 과연 우리는 하느님과 같은 영적 세계에 살고 있는가?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함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욕망에 젖어 하느님께서 그저 우리의 바람을 채워주시기를 청하고 또 청할 뿐이다. 우리가 이미 받은, 그리고 지금 받고 있는 선물들이 얼마나 많고 값진 것인지를 잊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섬겨주시기를 바라고 있으니, 정작 우리가 들어서야 할 하느님 나라, 사랑의 나라를 향한 관심은 엷기만 하다. 그 나라가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데도 말이다.
교우 여러분, 눈을 들어 하느님의 마음을 읽고 섬기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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