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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17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7-17 조회수 : 1944

“신부님! 정말 억울해요. 왜 저만 희생해야 하고, 제 것을 양보해야 할까요?”


억울하다는 생각에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다고 하십니다. 이분만이 아닙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억울함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국어사전에 ‘억울병’ 또는 ‘억울증’이라는 단어가 등록되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 뜻은 이렇습니다. 


‘기분이 우울하고 신체에 피로감을 느끼며 불안을 느끼는 증상’


현재 이런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이 증상에서 더 나아가면 우울증이 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신세 한탄을 하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증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억울함을 느끼게 되면 더 큰 병으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이 증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억울함이라는 의미보다 지금 자리의 가치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 가치를 찾으려고 집중을 하면 어디에서도 그 가치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개똥도 약에 쓴다’라는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억울함이 어디서 왔는지를 생각해보면 주로 내가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내가 어떤 생각으로 지금을 바라보고 있느냐에 따라 억울함의 크기가 결정됩니다. 따라서 관점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지금 자리의 가치를 먼저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억울한 사람을 따지고 보면, 예수님보다 억울한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싶습니다. 한없는 사랑을 주었음에도 사람들의 반대를 받아야 했고, 그 결과 아무런 죄도 없으면서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게 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신데, 그리고 그 힘으로 편하게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었음에도 당신의 힘을 드러내지 않으십니다. 


오늘 복음에도 나오듯이, 사람들을 고쳐주신 것을 널리 알려서 사람들이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예수님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는 함구령을 내리십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신 자신을 알리는 것보다 사람들의 구원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놀라운 기적을 행하는 마술사 예수님이 아닌, 진정한 구원자 예수님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때 비로소 진정한 희망으로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억울함 그 자체를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보여 주셨던 모습처럼,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가치를 향해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를 묵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관점의 전환이 사랑이신 주님을 느끼고, 그분과 함께 하는 결정적인 역할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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