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운동선수, 정치인 등의 일탈 행위가 뉴스에 종종 등장합니다. 잊을만하면 또 보도되곤 하지요. 사람들은 이에 크게 실망합니다. 사실 직접 만났던 사람도 아니고,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는 완전 남남인데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자신의 실망을 표현합니다. 인터넷에 게시글을 올리거나, 기사에 댓글을 답니다. 또 주위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 역시 실망을 널리(?) 알리는 방법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상대방을 이상화하면서 생각하고 느끼고 만들어온 환상이 깨졌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완벽한 인간이 있을 수 있을까요? 완벽한 상대방을 내가 만들었고, 이에 혼자 실망하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이런 사람을 공인이라고 하지요. 어떻게든 주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특히 조심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즉, 지금의 자리에서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합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실수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사회가 된다면 어떨까요? 절대로 안 되는 일일까요?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무조건 거부하고 보는 모습에서 주님께서 강조하신 사랑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는데, 어느 순간 어떤 죄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사람 자체만을 미워하는 것 같습니다.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어 먹는다고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말합니다. 그들은 단호하게 이야기하지요.
“보십시오,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을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 엄청난 죄인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즉, 배가 고파서 밀 이삭 따 먹은 것을 추수 행위로, 밀 이삭 껍질을 벗겨내기 위해서 손을 비빈 것을 타작 행위라면서 안식일 법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사람 자체만 미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억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인해 새 율법이 선포되었습니다. 이 율법은 사람을 옭아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려서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율법 준수보다 현재의 사랑을 실천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미워하는 역할은 더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사람을 받아들이고, 모든 이와 함께 주님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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