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청년이 “너무 오래 살았어.”라고 말하면 어떻겠습니까? 또 평사원에서 대리로 승진한 후에 스스로 으스대면서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있다면 어떨까요? 또 수중에 몇 푼의 돈을 지니고서는 대단한 부자인 척한다면요?
많은 이들의 비웃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스스로를 향한 자랑은 모두 비웃음거리가 아닐까요? 그런데도 우리는 자기를 드러내는 데 너무나 집중하고 있습니다. 자기 PR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교만에서 나오는 것은 결코 지혜로워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남들에게 진정한 인정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
나를 내세울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결국 주님을 믿고 있다는 것 외에는 내세울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을 주님께서 모두 빼앗아 가신다면 어떨까요? 아무것도 아닌 ‘나’라는 점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얻고자 하는 모든 것은 주님 없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굳게 믿는 사람은 결코 교만해질 수 없습니다. 대신 겸손의 삶을 살면서 주님과 함께하게 됩니다. 그리고 누리는 모든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주님께서 고향 나자렛에 가십니다. 그런데 고향 사람들의 반응이 영 시원찮습니다. 예수님을 이미 잘 안다고 여기면서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나자렛 사람들이 얻은 것은 무엇일까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점을 복음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즉, 믿음의 힘은 병을 고치는 것 이상의 일을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으면 당연히 하느님의 영광을 알아챌 수도 없고, 또 이런 이유로 기적을 굳이 일으키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잘 안다고 여기면서, 예수님을 대단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이는 곧 자신을 드러내려는 마음이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대단하다는 사람보다 자신이 더 훌륭했다는 것을 보여서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지요. 결코 지혜로운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볼 수 없습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에 더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만이 하느님의 영광을 볼 수 있으며, 하느님의 품 안에서 참 기쁨의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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