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구원 능력을 고백하는 신앙
[말씀]
■ 제1독서(지혜 1,13-15; 2,23-24)
기원전 1세기 중엽 희랍 세계의 지적 중심지로 알려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살고 있던 한 유다인은 지혜서라는 작품을 빌어 이방인들에게 이스라엘의 신앙을 소개한다. 저자는, 긴 시간의 묵상을 거쳐, 인간은 누구나 전 실존을 통해서 불사불멸의 삶을 일구어나가도록 초대된 존재라는 확신을 피력한다. 참삶은 눈에 드러나는 가시적 현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정의에 참여함으로써 죽음이라는 현실을 넘어 얻게 되는 삶을 말한다.
■ 제2독서(2코린 8,7.9.13-15)
예루살렘 교회를 도와야 한다는 소아시아와 희랍 교회의 신자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사도 바오로는 모교회(母敎會)인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모금 운동을 독려한다. 사도의 입장에서 이 모금 운동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화답하는 자선과 일치의 운동으로서 신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행위로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가지고 있는 재물을 나눔으로써 교회와 그 구성원들은 주님께서 이끄시는 새 세상 건설에 참여한다.
■ 복음(마르 5,21-43)
초대 교회신자들은 예수께서 이루신 놀라운 기적 사건을 서로 나누면서 그분의 능력을 예찬했으나, 복음저자 마르코는 무엇보다도 이 기적은 믿음의 사건이었음을 강조한다. 신앙은 쉽지 않은 행위로서 눈에 보이는 가시적 현상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상황이 좌절로 치닫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 대한 믿음을 고백할 수 있었던 복음 속의 회당장 야이로의 신앙처럼 말이다. 한편 하혈하던 여인 역시 건강회복이라는 인간적 계산을 뛰어넘어 주님과의 참된 관계로 나아갈 수 있어야 했다. 믿음이 약했던 여인, 그러나 주님이 도와주신다.
[새김]
■ 하느님은 당신 모습대로 인간을 불사불멸하는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믿음을 고백하는 신앙인들은 죽음이 인생의 끝이 될 수 없다는 신앙, 죽음이 하느님과의 관계를 결코 단절시킬 수 없다는 신앙으로 살아간다. 죽음이 제아무리 인간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그래서 인간은 흔히 죽음의 공포를 벗어나거나 잊으려 안간힘을 쓴다 하더리도, 가톨릭 신앙인들은 오히려 죽음을 정면에서 바라보고 준비하고 말할 줄 알며, 죽음 너머 참 생명, 영원한 생명이 기다리고 있다는 희망으로 지금 이 시간 열심히 기도하며 살아간다.
■ 죽음 너머 참 생명, 이를 확신하고 얻기 위해서는 주님의 구원 능력을 고백하는 믿음이 앞서야 한다. 회당장의 믿음이 딸을 살렸고, 믿음이 약했던 하혈하던 여인에게 치유와 함께 믿음이라는 근본적 선물이 주어졌던 것처럼 믿음이 우선이고 전부이다. 그러나 이 믿음은 또한 죽음으로 상징될 수 있는 온갖 유형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도와, 함께 구원의 나라로 향할 줄 아는 용기와 슬기를 심어준다.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모금 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교회의 모습이 아름답기만 하다. 하물며 북녘의 같은 민족을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교우 여러분,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어여삐 보시고 도와주십니다.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