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 속의 개구리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뜨거운 물이 담긴 냄비에 개구리를 집어넣으면 깜짝 놀라서 곧바로 튀어나오지만, 개구리를 찬물이 든 냄비에 넣고 천천히 수온을 높이면 밖으로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결국 익어서 죽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 어느 학자가 의문을 품었습니다. 개구리는 매우 감각적이어서 조그마한 소리에도 도망을 치지요. 따라서 물이 뜨거워지는 것을 감지하지 못할 리가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실제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았을까요? 잘못된 앎이었습니다. 개구리를 뜨거운 물이 담긴 냄비에 넣으면 냄비에서 탈출할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심하게 화상을 입어서 탈출하지 못해 죽었습니다. 반면 천천히 데워지는 냄비에서는 온도가 어느 정도까지 오르게 되면 개구리가 곧바로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있는 물이 뜨거워서 불편함을 느끼는 순간 모든 개구리는 밖으로 나왔습니다.
이 세상에는 잘못된 앎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잘못된 앎이 진실인 줄 알고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사람도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앎이 모두 진리일 리가 없습니다. 거짓을 진실로 착각하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직접 그 모범을 보여주셨지요. 하느님이시지만 연약한 인간의 육체를 취해서 이 땅에 오신 것 그 자체가 겸손의 모범입니다.
주님께서는 남을 심판하지 말 것을 이야기하십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그렇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으로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고 심판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 잘못된 판단이 자기 자신의 심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들보와 티에 관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예수님의 직업이 목수였기 때문에 나무로 대들보를 만드는 과정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닐까 싶습니다. 들보는 집을 지을 때 세우는 대들보를 말하는 것으로 매우 굵고 큰 나무 둥치를 뜻합니다. 반면에 티는 나뭇가루를 말할 수 있겠지요. 따라서 들보는 큰 잘못, 티는 작은 잘못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큰 잘못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작은 잘못 가진 사람에게 더 뭐라고 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도 하지요. 그러나 주님께서 보시기에는 너무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입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겸손의 삶을 기억하면서 남을 심판하기 전에, 먼저 자신 안에 있는 들보나 티를 찾아보았으면 합니다.
연결과 성취감 그리고 자주성
겨울옷을 세탁하려고 꺼내서 주머니를 살피다가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찾았습니다. 이 돈을 어디에 써야 제일 행복할까요?
1) 점심 식사를 업그레이드한다.
2) 간식을 사 먹는다.
3) 식당 계산대 옆의 결식아동 돕기 모금함에 넣는다. 컬럼비아 대학교 던 교수에 따르면, 63%가 넘는 사람들은 스스로가 아닌 남을 위해 쓰는 편이 더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남을 위해 돈을 쓰면 행복할까요? 그 이유를 던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 연결입니다.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행복해집니다. 그래서 사회적 관계가 두터울수록 행복감은 커집니다.
둘째, 성취감입니다. 일상이나 학습이나 일등 다양한 방면에서 노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분입니다. 이 기분을 남을 위해 사용했을 때도 똑같이 느낀다는 것입니다.
셋째, ‘자주성’입니다. 탐욕은 행복을 오래 끌지 못합니다. 그런데 탐욕을 떨치고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다는 자주성이 생기면 행복해지게 됩니다.
연결과 성취감 그리고 자주성을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