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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2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12-21 조회수 : 1549

12월21일 [대림 제 4주간 월요일] 

복음: 루카 1,39-45


인간관계를 내 마음대로 끊어도 되는가?




오늘 복음은 성모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방문하시는 내용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가만히 보면 인간관계가 매우 협소해 보입니다.  


성경만 보면 성모님이 많은 사람과 교제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분이지만 그분이 친밀하게 교제한 분들은 손에 꼽을만합니다.  


‘모든 사람의 친구는 누구의 친구도 아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제하는 사람의 수가 많아지면 그 깊이가 줄어들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관계란 주님께서 정해주시는 것이긴 하지만, 관계를 끊는 것을 두려워해서 모든 사람과 연결되려고 하는 마음도 바꿔야 합니다.

그러다 누구와도 교제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끊을 것은 끊고 맺을 것은 맺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관계가 주님께서 맺어주신 것이 아니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주님께서 맺어주셨다면 반드시 좋은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발전이 없다면 과감히 끊어야 합니다. 


40세에 배우 오디션에 나가서 5등을 한 아직도 신인배우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배우 허성태입니다.

그는 연봉 7천이 넘는 회사에서 8년을 일하다 결혼하고 6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배우의 길로 뛰어든 사람입니다. 회사의 생활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시장에서 장사하시며 2남 1녀를 잘 키워주신 어머니는 연신 걱정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말해주었고 그것 때문에 결혼을 결정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늦은 나이에 시작한 연기자의 삶은 그리 녹록지 않았습니다.

갖은 단역을 거치며 별의별 아르바이트를 다 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행복했습니다.

그가 뜨게 된 것은 김지운 감독의 영화 ‘밀정’입니다.

그 영화에서 송강호 씨에게 뺨을 맞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는 뺨을 맞으면서도 너무 행복했다고 합니다.

그가 존경하는 김지운 감독 밑에서 그가 사랑하는 배우 송강호 씨에게 뺨을 맞는 것은 오히려 영광이었습니다.

물론 아주 유명해진 것은 아니지만 이젠 어느 정도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습니다. 


뺨을 맞으면서도 행복하다면 그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허성태 씨는 직장에서 하도 긴장하여 손에 땀이 흐르는 다한증까지 생겼었습니다.

그는 아무리 연봉이 좋았다고 하더라도 지금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행복하지 않다면 자신과 같은 용기를 내어보라고 말합니다.

[참조: “하고 싶은 걸 하세요”, ‘대기업을 관두고 맨땅에 헤딩을 하다’, 허성태, JTBC 말하는대로, 유튜브]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현실의 벽에 부딪힙니다.

자신의 꿈을 위해 가족을 희생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투자한 것이 아까워서 계속 끌려다니면서도 관계를 유지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관계여서가 아니라 나의 집착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우선은 지금 다니는 직장이나, 혹은 지금 만나는 모든 사람이 다 주님께서 교제하라고 맺어주시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만나는 사람과 다 결혼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주님은 한 사람만 혼인할 수 있도록 정해주십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그 이상의 선을 넘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관계를 정해주신다고 믿으면 그만큼 끊는 선도 확실해집니다.

그래서 관계를 끊지 못해 힘들어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어느 선에서 끊어야 하느냐인 것입니다.

그리고 끊거나 이어갈 사람을 어떻게 분별하느냐 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겠습니다.

성모님은 그 귀한 시간에 엘리사벳에게 달려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엘리사벳에게 당신의 도움이 절실했기 때문입니다.

늦은 나이에 아기를 잉태하여 기쁘기도 하겠지만 불안한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당신의 도우심이 필요한 곳으로 달려가셨습니다.

또한, 엘리사벳은 성모님의 방문을 매우 감사해합니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라며 황송해합니다.  


성령으로 가득 차면 이렇게 상대를 높여주고 존중해주며 감사해합니다.

서로 행복해집니다.

성모님께서도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라시며 기쁨과 감사, 찬미를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이렇게 만남을 통해서 두 사람에게 성령의 열매가 함께 맺힌다면 이것만큼 좋은 관계는 없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행복입니다.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 만남을 지속하거나 끊는 것은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열매도 맺지 못하는데 만나는 것은 내가 지닌 아주 조금의 성령의 힘도 열매 맺지 못하는 땅에

소진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지속하면 성령께 모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얼마만큼 기다려줘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가리옷 유다를 기다려 준 시간 정도는 노력을 하는 게 옳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3년은 가리옷 유다를 참아주셨습니다.

그러나 성령과 반대로 가는 그를 더는 버티지 못하시고 악으로 넘겨버리십니다.

이것은 잔인함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성령의 은혜를 무의미하게 소진하지 않는 성령께 대한 존중입니다. 


“아무리 문이 많아도 열리지 않으면 벽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3년 동안 열었는데 행복의 문이 열리지 않으면 그건 문이 아니라 벽입니다.

3년을 다녔는데 점점 더 행복하지 않다면 그건 주님께서 선택해주신 직장이 아닙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나 자녀와 같이 처음부터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관계가 아니라면 그것에 모든 에너지를 소진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래 만났는데도 성령의 열매, 행복의 열매가 맺히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해도 될 것입니다.

그래도 끊지 못하면 그건 나의 집착일 뿐입니다.  


좋은 관계는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서로 행복합니다.

하느님도 인간과 그런 관계를 맺으십니다.

물론 그분이 우리와 영원한 관계를 이어가시든지, 영원히 관계를 끊으시든지는 우리 각자의 죽음의 시간에 결정이 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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