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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24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6-24 조회수 : 485

6월 24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이사야 49,1-6
사도행전 13,22-26
루카 1,57-66.80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김새해 작가를 인터넷에 쳐보면 숙대 중문학과 졸업이라고 나옵니다. 
그런데 그녀의 삶은 실로 고통의 연속이었다고 말합니다.  
 
타인으로부터 받은 상처와 그로인한 트라우마는 그녀를 폭식증과 거식증을 오가는 몸과 마음이 
불안한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부모님의 사업부도로 그녀는 신분증과 건강보험증도 없이 10년간의 국제 난민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화가의 꿈을 키웠습니다. 짬짬이 돈을 모아 작품전시도 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삶은 버거운 짐일 뿐이었습니다. 
가야할 곳이 보이지 않을 때는 죽음이란 것을 생각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책을 읽고 또 많은 사람들의 조언을 들으며 그녀는 자신의 삶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살도 빼고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까지 하였습니다.
기쁨도 잠시, 하루 소변 한 방울도 볼 수 없으리만큼 신장이 나빠져 삶과 죽음을 오가는 1년을 보내야만했습니다.  
 
자녀를 갖고 싶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기적적으로 몸이 회복되었고 자녀를 낳았습니다. 
더불어 사회생활도 왕성하게 시작하여 인기 블로거, 인기 유튜버가 되었고 책도 출판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죽기 전에 책이라도 읽고 죽자.’는 생각으로 선물 받은 책을 읽다가 김새해 작가가 고생한 것에 비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깨닫고 안 죽기로 결심했다고도 합니다. 
이렇게 지금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을 합니다. 
 
그녀는 현재 네 아이의 엄마입니다. 
그녀가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아기의 숫자를 세는 것이라고 합니다. 
남편까지 다섯. 불과 십년 전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행복한 순간입니다. 
정말 꿈만 같아서 자신도 꼬집어보고 남편 볼도 꼬집어본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쩌면 미래에 행복한 삶이 마련되어 있는데도 지금 알 수 없다는 것 때문에 
불안해하는지도 모릅니다. 
인생의 순간순간은 우리 예상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부모가 마치 공부 잘하면 어느 대학 가고 그러면 어느 직장에 들어가 좋은 사람과 결혼하는 등의 
내 삶의 줄거리를 이야기해 주었을 수도 있습니다. 
 
김새해 씨가 어렸을 때 지금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고 그의 부모도 그러했을 것이듯, 
누구도 나의 미래에 대해 결정해 놓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나의 미래는 하느님만 아십니다. 
남이 그렇게 결정해 놓은 것을 내가 따라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따라가지 못한다고 실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만드신 이유는 살아가면서 조금씩 알게 됩니다.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알기까지는 수없는 방황을 거치게 됩니다. 
그것이 또한 인생의 묘미일 것입니다.  
 
저도 어렸을 때 제가 사제가 될 것이라고는 꿈도 못 꾸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사제가 되어있으니 오히려 이것이 주님의 뜻이라는 더 큰 확신을 줍니다. 
 
오늘은 세례자 성 요한이 탄생한 날입니다. 
하느님은 세례자 요한이 현실적으로는 아기를 낳을 수 없는 나이의 부부에게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우리는 아기가 무엇이 될지 모릅니다. 
자기 자신도 모릅니다. 
누구도 모릅니다. 
오로지 하느님만 아십니다.  
 
그런데 자칫 부모는 아이가 의사가 되기 위해, 판사가 되기 위해, 정치인이 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알려주려고 합니다. 
그건 분명 하느님께서 그 아이를 위해 마련한 계획과 같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릅니다.
하느님은 우선 세례자 요한을 당신이 원하는 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 부모와 사람들의 기대를 버리도록 하셨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탄생했을 때 사람들은 아기의 이름을 즈카르야라고 부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기 어머니와 아버지는 반대합니다.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라며 의아해합니다.
아이의 미래를 마치 자신들이 알기나 한 듯 이름을 지으려하는 인간의 교만을 나타내는 장면인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즈카르야도 벙어리가 되었었습니다.  
 
즈카르야가 그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라고 하자 그의 혀가 풀렸습니다.
하느님은 이렇듯 요한을 위해 그의 부모를 길들이셨습니다. 
요한은 그들의 것이 아니라 당신의 것임을 확실히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그제야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하고 다시 의아해 하기 시작합니다. 
즈카르야라고 했다면 그의 사제직을 물려받을 것이라고 당연히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기는 주님께서 직접 보살피셨고 이스라엘 백성 앞으로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요한을 요한으로 쓰기 위해 먼저 부모와 사람들의 기대로부터 떨어뜨려 놓으셨던 것입니다.
저는 삼형제 중 막내입니다. 
집안 형편이 저를 낳을 정도가 안 되었습니다. 형 둘 키우는 것도 벅찼습니다.  
 
그러나 딸을 낳고 싶은 마음을 주님께서 부모님께 넣어주셨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딸인 것을 확신하셨습니다. 
진통 때도 “이 계집애, 왜 이렇게 안 나와!”라고 외치셨습니다. 
그런데 낳고 보니 또 아들이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딸로 나왔어야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사제가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각자의 계획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부모나 다른 사람들이 해주는 말을 듣지 말고 우리 스스로 주님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이유를 찾아야합니다.


그것이 지금은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열심히 찾고 살다보면 알게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나의 종착역은 주님만 알고계십니다. 
주님의 창조 의도대로 살고 싶다면 주위의 나에 대한 의견에 휘둘리지 말아야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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