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걸어서 성지순례를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힘들어서 잠시 쉬고 있는데 그 앞으로 마차가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길을 물었습니다.
“예루살렘까지 가려면 아직 멀었습니까?”
마차를 끌고 가던 남자는 “한 30분 정도면 됩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이 말에 ‘다 왔구나.’라는 안도감이 생기면서, 조금 편하고 싶은 마음에 “혹시 마차에 저를 태워줄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마음씨 좋게 생긴 남자는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이제 마차에 탄 그는 풍광을 즐기면서 편안하게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30분이 지났음에도 예루살렘에 도착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는 “아직 멀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마부는 “한 1시간쯤 가야 합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닙니까? “아까 30분이면 간다고 말하지 않았소?”라고 물으니, 마부의 대답에 이 순례자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대답은 이러했거든요.
“저는 예루살렘 반대편으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제대로 된 방향이 아니면 더 고생을 할 뿐입니다. 그만큼 방향이 중요합니다. 방향만 제대로 알면 어떻게든 목적지에 도달할 수가 있지만, 이 방향을 알지 못하면 목적지와 정반대로도 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요? 혹시 주님이라는 밝게 빛나는 별을 향해서 아니라, 잘 보이지 않는 세상의 물질적인 것들만을 쫓아서 가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회당에 들어가셔서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을 읽으시면서 주님의 은혜로운 해, 즉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십니다. 이렇게 선포하실 때의 주님의 입장을 생각해보십시오. 마냥 기쁘셨을까요? 죄 많은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이끄는 어렵고 힘든 길이었습니다. 또한 이 선포를 통해 그만큼 당신의 죽음도 가까워진다는 것을 아셨을 것입니다. 당신께 찾아올 고통과 시련 그리고 죽음까지도 모두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이 하느님 나라의 선포가 과연 기쁘셨을까요?
하지만 주님께서는 힘차게 선포하십니다. 이 하느님 나라의 선포가 하느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제대로 된 방향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의 어렵고 힘듦을 피하기 위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주님처럼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삶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나중으로 미루면서 결단을 세우지 못하는 미적미적한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을 쫓는 길이 아닌, 하느님을 쫓는 길. 이 길을 통해서만 구원의 길이 활짝 열려 있으며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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