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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15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1-15 조회수 : 263

해외에 나가면 휴대전화를 켜는 순간 문자 메시지 왔다는 소리가 우렁차게 울립니다. 처음에는 ‘해외에 나왔는데 누구한테 온 메시지이지?’라고 생각했었지만, 몇 번의 경험이 있은 뒤에는 어디에서 문자 메시지가 오는 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외교부에서는 오는 문자 메시지입니다. 제가 도착한 지역에 대한 주의 메시지와 함께 위급할 때에는 영사콜센터를 이용하라는 안내를 해줍니다. 

언젠가 신부들과 함께 해외에 나갔을 때, 이때도 예외 없이 외교부에서 문자가 왔습니다. 그런데 한 신부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휴대전화 하나로 위치 추적이 가능하다니까? 이렇게 문자 메시가 오면 감시받는 느낌이야?”

그런데 다른 신부는 조금 다르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 나는 오히려 내가 국가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은데?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나를 보호해 줄 수 있잖아.”

똑같은 문자 메시지인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서 화가 나는 상황도 될 수 있고, 또 반대로 기분이 좋은 상황도 될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사랑의 마음으로 바라보느냐에 그렇지 않은가에 따른 결과가 아닐까요? 사랑에서 나오는 긍정의 마음을 통해서 내게 다가오는 모든 상황을 좋게 만들 수 있습니다. 

사랑을 가지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사랑의 마음을 먼저 간직하기보다는 자신의 판단을 내세워 단죄하려는 마음을 앞세울 때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나쁜 상황이 가득하게 됩니다.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예수님의 신원에 대해 이렇게 외칩니다.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마르 1,24)

사실 베드로도 예수님에 대해서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이 고백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칭찬하셨고,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의 고백에 대해서는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라고 꾸짖으십니다. 똑같은 고백인데 왜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셨을까요? 바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사랑으로 고백했고,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은 두려움으로 고백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어떤 마음으로 다가서고 있을까요? 사랑입니까? 아니면 두려움입니까? 긍정적인 마음입니까? 아니면 부정적인 마음입니까? 

늘 사랑으로 주님께 나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의 우리 상황이 바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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