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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5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1-05 조회수 : 281

1월 5일 [주님 공현 전 토요일] 
 
복음: 요한 1,43-51: 필립보와 나타나엘과의 만남
 
예수님은 필립보를 보시고, “나를 따라라.” 하고 그를 부르신 것은 공관복음서에 나타나는 제자들의 소명들에 많이 소개되는 형식이다(참조: 마르 2,14; 10,21; 루가 9,59). 이 필립보는 나타나엘을 주님께 인도한다. 필립보는 나타나엘에게 자기와 자기 동료들이 예수님에게서 모든 구약성서를 의미하는 형식인 “모세의 율법서와 예언자들의 글에 기록되어 있는”(45절) 분을 만났다고 확언을 한다(참조: 1. 모세와 관련하여: 루가 16,29.31; 24,27; 사도 26,22; 28,23; 2. 율법과 예언서: 마태 5,17; 7,12; 11,13; 22,40; 루가 16,16; 24,44; 로마 3,21). 
 
나타나엘 역시 성서연구에 열중하고, 메시아를 기다리고 찾던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필립보는 다른 것은 이야기하지 않고 보통 유다인들이 말하듯이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하고 말하였다(45절). 
 
예수께서 탄생하신 도시의 이름을 듣자마자 나타나엘은 즉시 회의론을 편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46절). 이 역설적인 질문에는 메시아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런 지방에서 태어날 수 있다는데 의혹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요한 7,52의 경우와 같이, 성서를 연구하는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나자렛은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중요성이 없는 곳이었고, 거기에 대해서는 구약의 어느 곳에도 언급된 곳이 없는 곳이다. 
 
가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는 나타나엘은 요한 6,42의 유다인들과 마찬가지로 메시아의 비천한 기원에 대해 경악하고 있다.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들에게 메시아가 육으로 왔다는 것은 큰 어려움일 것이다. 나타나엘은 신앙으로써만이 장애의 원인을 극복하고 예수님의 신적인 기원을 지상적인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을 보여주는 모델이다. 그 신앙은 바로 예수께서 당신의 말씀과 당신의 권위로 일으켜주시는 신앙이다. 
 
필립보는 그에게 “와서 보시오.”(39절 참조)고 하며 권한다(46절). 나타나엘은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 아직 인사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47절)고 말씀하신다. 이 말에 깜짝 놀라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48절) 하셨을 때, 그는 완전히 믿게 되었다. 
 
‘무화과나무 아래 있다’는 것은 율법을 연구하기 위한 것으로 아마 나타나엘은 메시아 대망에 관계되는 성서를 읽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타나엘은 예수님의 메시아성에 대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49절). ‘하느님의 아들’이란 표현은 예수께서 하느님과 가까이 계신 분이며, 그분과 연결되어있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또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50절). 제자들은 이제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그분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51절). ‘사람의 아들’은 하느님의 충만한 계시의 ‘장’이고, 사람의 아들 안에서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신다(참조: 요한 2,11; 11,40; 14,8이하)는 것이며, ‘하늘이 열린 것’은 천사들이 먼저 내려오는 것 그리고 올라가는 것을 생각하게 할 것이다. 이 땅에 있는 ‘사람의 아들’로부터 천사들이 기도와 청원을 가지고 하느님께로 오르고, 그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다시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것이다. 
 
나타나엘은 예수님을 만나면서 굳은 신앙을 갖게 되었고 이제 더 큰 일들을 보게 될 것임을 약속 받았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이론적으로 알려고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분을 직접 체험하여야 한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체험으로 만나는 그분은 우리에게 더 큰 일들을 보여주실 것이며 깊은 신앙에로 인도해 주실 것이다. 이러한 삶을 조금이라도 시도하면서 우리 자신의 변화를 이루어 간다면 우리도 나타나엘과 같은 신앙을 고백할 수 있을 것이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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