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일 [주님 공현 전 수요일]
복음: 요한 1,29-34 : 하느님의 어린양이 저기 오신다.
어제 복음에 이어 오늘 복음에서도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증언하고 있다. 즉 예수님은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29절), 희생적인 구원자이시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32절) 분,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33절)으로 증언하고 있다. 이렇게 세례자 요한은 구체적으로 더 깊게 주님을 증언하고 있다. 예수님께 대한 이 증언의 내용을 살펴보자.
예수께서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라는 것은 그분이 사람들로 하여금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도록 힘을 주시는 분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오늘 독서인 1요한 3에 근거해서 ‘하느님의 어린양’을 하느님의 영을 당신 자신이 가지고 계시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도록 세례로 사람들에게 성령을 가득히 부어주시는 ‘하느님의 종’으로 이해한다면, 세례자 요한의 증언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것”은 1요한 3,5에 근거하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반복 불가능한 구원의 업적으로 볼 수 있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죄로부터 해방시켜 주시고(5a), 죄 없으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게 하시고(5b), 그분 안에 머물면서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다(6절).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것”은 전 인류의 죄를 의미하는 것으로 십자가를 바라보지 않고는 알아들을 수 없는 개념이다.
초기 교회에서는 대속(代贖)의 개념을 고통 받는 하느님의 종의 노래에 연결시켰고(이사 52,13-53,12), 이 노래의 메시아적 주석이 오래된 것이라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여기서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표현의 기원으로 추구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하느님의 종을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과, 입을 열지 않는 어린양(이사 53,7)에 비유하면서, 하느님의 종이 “우리의 죄를 지고 가시는” 것으로 말한다.
이 ‘지고 가시다’(phérein, LXX)는 요한 1,29와 1요한 3,5의 죄를‘없애다’(aírein)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다. ‘없애다’라는 것은 죄에 대한 벌을 자신에게 지우는 것과 같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마르 8,34의 십자가 참조). 즉 하느님의 어린양은 하느님의 종이시다.
세례자 요한은 이제 고통 받는 하느님의 종이신 어린양께서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분이라고 증언한다. 이 증언으로 세례자 요한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에 대하여 말하면서 29절 이하의 말씀에 대해 그의 그리스도론적인 고백을 확대하고 있다. 즉 거룩하시고 먼저 계셨던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오신 메시아께서 당신의 참혹한 죽음으로 세상의 죄를 없애신 분이시며, 오직 그분만이 탁월하게 구원의 선물 즉 성령을 인간들에게 주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에 근거한 예수께 대한 증언을 수렴하고 있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34절). 우리도 우리의 십자가를 잘 짐으로써, 성령으로 충만한 그리스도를 닮는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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