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일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복음: 요한 1,19-28 : 이분은 내 뒤에 오시는 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세례자 요한의 증언을 소개하고 있다. 당시에는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로마를 대항하여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도 그리스도로 생각하여 많은 군중이 그들을 따랐던 것이다. 예수님 수난기에 나오는 ‘바랍바’도 그리스도로 불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의례 추종하는 자들이 있었고 대부분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명멸했던 것이다.
세례자 요한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즈카르야의 아들로 제사장직을 이을 수 있는 혈통이었음에도 그 직분과는 거리가 먼 광야에서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말과 행동을 보고 혹시나 그가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물론 세례자 요한에게도 그의 제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성서를 통해 알고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 나타나셨을 때에 자기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고 역사의 뒤로 사라지는 그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인간적으로 자신의 위엄과 힘을 군중들의 힘을 빌어 나타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적인 모습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메시아로 생각하면서 따를 수 있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자신의 사명에 충실한 면을 보여준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에게 메시아가 아닌가 하고 묻는 말에 그는 솔직하게 ‘아니다.’라고 했다(20절). “엘리야요?” 하였을 때 또 아니라고 대답하였다(21절). 이 엘리야는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와서 반대자들을 처리해 주고, 물건이건 사람이건 깨끗한 것과 불결한 것을 가려주고, 흩어져있던 유다인들을 한데 모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인데, 그도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면 그 예언자요?”(21절)하고 물었을 때 그도 아니라고 하였다. 이 예언자는 신명 18,15에서 모세가 한 말에 있는 예언자이다. “너희의 주 하느님께서는 나와 같은 예언자를 동족 가운데서 일으키시어 세워주실 것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한 예언자인데 그도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요?”(22절) 하였을 때, 세례자 요한은 이사 40,3에 나오는 대로, 왕이 오실 때 그 길을 준비하라고 외치는 소리라고 하였다(23절). 그러면서 자기를 그렇게 보지 말고 오직 자기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 자격도 없는 사람이며, 이미 와 계신 분을 바라보라고 하였다(26-27절).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는 작고 크고 간에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과대포장을 하여 드러내려고 하지나 않는지! 우리는 “백마병” 환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나 자신을 드러내는 오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으로 주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도록 하여야 한다. 이 미사 중에 우리는 세례자 요한과 같이 하느님과 사람들 앞에 솔직함과 겸손을 갖도록 기도하여야 할 것이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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