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오로 가는 길
오늘 복음은, 복음 저자 마르코가 스치듯 간략하게 언급하는 정도의 내용을(마르 16,12-13) 루카가 오래된 고유 전승을 참조하여 비교적 상세하게 기술하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약 11km; 일부 수사본에는 30km) 거리의 엠마오로 가던 길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뵙고 전한 이야기입니다. 일자가 (주간 첫날) 바로 그날로 명시되어 있는 것을 보면, 예수님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신 그날, 곧 (유다교 전례력으로는 안식일 다음 날이 되겠지만, 그리스도교 전례력으로는) 주일 당일에 펼쳐진 일이 소개됩니다.
두 제자가 엠마오로 가던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가까이 다가서시지만, 어제 복음의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그분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러하기에 부활신앙을 고백하기 위해서는 어제처럼 또 한 번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한 채 멈추어 섭니다.
‘침통한 표정’은 이러한 (한심한?) 질문을 하는 사람에 대한 불만의 표정일 수도 있겠지만,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셨던 분,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했던 바가 무너져버림에 대한 좌절과 체념의 표정일 수도 있습니다.
몇몇 여자 또는 동료 몇 사람의 증언이 있었지만, 시신을 찾지 못했다는 사실과 그분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만 귀에 들어올 뿐, 그 사실만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십자가상 죽음이라는 극복하기 힘든 걸림돌 때문에 믿음까지 잃어버리거나 포기한 제자들이 그 걸림돌을 뛰어넘기에는 힘이 부족합니다.
예수님이 짙은 어둠과 실의에 빠져 있던 이 두 제자에게 다가와 동행하시기로 마음 정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시는 예언자 또는 이스라엘을 로마제국에서 해방해 줄 정치적 영도자 정도로 믿고 따랐던 이 제자들이 그분을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로 믿어 고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살피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유다교는 아직 (구약)성경 경전을, 다시 말해서 성경 권수를 확정해 놓은 상태가 아니었기에(기원후 95년에 가서 확정), 모세와 모든 예언자라는 표현 자체가 (구약)성경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되곤 했습니다. 모세오경은 확고하게, 예언서는 어느 정도 확정이 되어 있었으나, 그 밖의 성문서는 미정인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성경 살핌 다음으로 성찬례 참여 단계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때와 똑같은 의식을 거행하셨다고 보기는 힘들겠지만, 복음 저자 루카는 성찬례의 어휘를 이용하여 빵을 뗌으로써, 곧 성찬례에서 빵을 나누어 먹음으로써 이 두 제자가 부활하신 분을 만나 뵐 수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엠마오의 두 제자가 부활 신앙에 이르게 된 데에는 부활하신 분의 도움으로, 그리고 그분을 중심으로 성경을 다시 읽고, 최후의 만찬 중에 그분이 세워주신 성찬례 참여를 통해서였습니다.
성경을 늘 가까이하는 신앙생활, 주일미사는 물론 평일미사에도 열심히 참여하여 성체를 모심으로써 부활 신앙인의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겠다는 다짐으로, 오늘 하루 기쁘고 행복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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