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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17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04-17 조회수 : 133

모든 것을 뒤집는 데 명수이신 예수님! 
 
 
성 목요일 세족례 때 마다 생각나는 한 가지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아이들과 살 때, 운동 시간이 되면 젊은 혈기에 꽤 과하게 축구를 하고 농구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여기저기 상처 투성이였습니다. 
 
한번은 여름에 발에 크게 상처가 났었는데, 시간 지나면 낫겠지 하고, 신경을 쓰지 않았더니, 상처 부위가 곪아서 퉁퉁 부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열도 펄펄 나고, 어쩔 수 없이 수녀님들이 운영하던 작은 단골 의원으로 갔습니다.
제가 봐도 심각할 정도로 지저분해진 발이라, 내놓기조차 부끄러웠습니다.
그런데 의사 수녀님께서는 깜짝 놀라시면서, 빨리 오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뭐 했냐면서 크게 야단부터 치셨습니다. 
 
그리고 그 더러운 발을 당신 손으로 직접 소독해주시고, 작은 수술도 해주시고 후속 조치를 깔끔히 해주셨습니다.
치료하시는 내내 얼마나 송구스럽고 난감하고,
저는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동서를 막론하고 발이라는 것은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신체 부위인 듯
합니다.
신체 중에 가장 많이 사용하다 보니, 땀도 많이 나고, 지저분해지고, 냄새도 나고 그래서인 듯 합니다. 
 
이런 연유로 유다인들의 전통 안에서 세족(洗足)은 아랫 사람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종이 주인에게, 부인이 남편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행하던 것이었습니다.
만일 주인이 종의 발을, 남편이 부인의 발을, 아버지가 아들의 발을 씻어주는 행위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지탄받아 마땅한 몰지각한 행위였습니다.
그런 배경에는 권력을 지닌 사람이나 가진 자들, 윗사람의 허영심과 과시욕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모든 것을 뒤집는 데 명수이신 분이십니다.
껄끄럽고 어색한 것을 못견뎌 하시는 분이십니다. 아직도 허세와 명예욕으로 가득한 제자들과 오늘 우리에게 보란 듯이 강펀치 하나를 날리십니다. 
 
아무리 말씀으로 가르치고 또 가르쳐도 못 알아 들었던 제자들과 오늘 우리를 향해 온몸으로
귀한 가르침을 건네시는 데, 그것이 바로 세족례였습니다. 
 
최후의 만찬 중에 갑자기 식탁에서 일어나신 예수님께서는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셨습니다.
허리를 굽혀 제자들 앞에 무릎을 꿇으십니다.
한명 한명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수건으로 닦아주셨습니다. 
 
이윽고 베드로 사도 차례가 되었습니다.
너무나 뜻밖의 상황이 눈 앞에 펼쳐지니 베드로 사도는 무척이나 당황했습니다.
머릿속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두번이나 완강히 거절합니다.
“주님,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요한 13,6)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요한 13,8) 라고 단언하십니다. 
 
위 단언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세족을 거부한다는 것은 스승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베푸시는 교회의 세례를 거절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세족례와 세례를 거부하면 스승과의 인연을 끊는 절교인 것입니다. 
 
구세주 하느님께서 그 존귀하고 순결한 손으로 하찮은 한 인간 존재의 더러워진 발을 씻어주시는 행위가 곧 세족례라는 것을 생각하니, 얼마나 은혜롭고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세족례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 존재의 가치와 품위를 크게 높여주셨기에 깊은 감사를 드려야겠습니다.
또한 권력이나 권위는 군림이 아니라 섬김을 위한 도구임을 온 몸으로 알려주시니 또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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