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해지고 싶으냐?
이스라엘을 성지 순례하다 보면, 예루살렘에 이르러서는 북동쪽 모서리에 자리한 성문, (양이나 염소와 같은) 희생제물로 바칠 짐승들을 이곳을 통해 들여왔다 해서 붙여진 양 문 또는 스테파노가 순교한 곳이라 해서 붙여진 스테파노 문이라 불리는 성문에서 가까운 벳자타 못을 방문하게 됩니다. 물론 폐허 상태이기는 하나, 주랑 터로 추정되는 장소가 발견되었다는 사실로 고고학적 신빙성을 간직하고 있는 장소입니다. 벳자타 못도 못이지만, 이 못 바로 앞에 성 안나 기념성당이 세워져 있어 수많은 순례자를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이 벳자타 못 주위에는 많은 병자, 그리고 결정적인 시기에 병자를 그곳으로 인도할 가족이나 친지 등 간병인들이 못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일부 수사본에는 3절 끝부분과 (성경 본문에는 빠져 있는) 4절에 “그들은 못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따금 주님의 천사가 그 못에 내려와 물을 출렁거리게 하였는데, 물이 출렁거린 다음 맨 먼저 못에 내려가는 이는 무슨 질병에 걸렸더라도 건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하는 내용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이 내용의 역사적 사실성 여부를 떠나, 예수님은 오늘 서른여덟 해 동안이나 병으로 고통 받으며 치유를 간절히 원하던 병자 한 사람을 눈여겨보십니다. 물이 출렁거릴 때 못 속에 뛰어들고 싶어도, 도와줄 이 아무도 없던 가련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 직접 치유를 청하지 않았음에도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라는 구원의 소리를 선뜻 건네주실 정도로, 참 사정이 딱한 사람이었습니다. 구원의 소리와 함께 “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어 자기 들것을 들고 걸어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복잡해집니다.
분명 벳자타 못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이 병자를 보았을 것이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 가족이나 지인의 치유가 우선이니, 마음뿐 도와줄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 사람이 멀쩡히 걷는 모습을 보고, 놀라워하거나 함께 기뻐해야 함에도, 오늘이 안식일이라는 사실을 근거로 이의를 제기합니다: “오늘은 안식일이요. 들것을 들고 다니는 것은 합당하지 않소.” 사람을 살리기 위해 제정된 생명의 법, 안식일 법이 죽음의 법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이 병자는 자신을 치유해주신 분이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다고 대답하지만, 정작 그분이 누구인지는 모릅니다.
치유를 청해본 적도 없었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정작 본인도 치유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더구나 오늘은 안식일, (안식일 법이 엄금하고 있는) 치유를 행사하시고 들것을 들고 가라고 말씀하신 분이 누구인지 병자는 비로소 찾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자신을 낫게 해주신 분을 찾아 헤매면서, 자신이 완치되었음을 더욱 깊이 느끼고 건강을 허락해 주신 그분께 오로지 감사의 마음뿐이었을 것입니다.
그분이 예수님임을 확인하고 이 사실을 유다인들에게 알리나, 결국 이 알림조차 예수님께 대한 반대와 박해를 가중시키리라는 예측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선을 행하시고도 악으로 갚음을 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늘 우리의 마음을 짓누릅니다. 조그마한 선행에도 큰 감사와 보답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우리의 마음을 보시고, 주님은 오늘도 “건강해지고 싶으냐?” 하고 물으십니다.
신앙생활의 기간만큼 신앙적으로 더욱 건강한 사람, 튼튼한 사람,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 주위에 정신적 또는 육체적인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기도하며 다가가 도움을 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더욱 주위를 살피고 조금만 더 다가서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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