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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30일 _ 김건태 루카 신부

작성자 : 김건태 작성일 : 2025-03-29 조회수 : 110

화해의 시기

 


[말씀]

1독서(여호 5,9ㄱㄴ.10-12)

오늘 독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약속대로 요르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발을 디딘 다음, 그 땅의 소출로 처음 지낸 파스카 축제를 전해 줍니다. 물론 약속의 땅 진입은 축복의 표지였던 땅을 향한 떠돌이 생활의 마침표로 보일 수 있었으나, 이는 어디까지 참 행복을 향한 기나긴 여정의 초보 단계에 불과했습니다.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약속의 땅을 정복해 나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감사의 축제와 함께 새로운 시작이 펼쳐집니다.

2독서(2코린 5,17-21)

사도 바오로에게 참된 약속의 땅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가 다스리는 새로운 내적 세계입니다. 바오로는 하느님과 인류의 화해를 위해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세계가 모든 민족에게 열리게 되었음을 전하는 사명 앞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듯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따지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남기셨으니”, 죄스러운 인간의 조건을 짊어지신 채 우리를 찾아오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간은 비로소 하느님과 의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복음(루카 15,1-3.11-32)

탕자의 비유 이야기를 통해 복음서 저자 루카는 자신의 복음서에서 줄곧 상호 대치되는 그룹으로 등장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한편에는 자신의 가련한 처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거저 베푸시는 사랑의 선물 앞에 온전히 열려 있는 세리들과 죄인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자신들의 선행을 내세우며 스스로 만족함으로써 하느님의 자비에 별 아쉬움을 느끼지 못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족함이 없는 이들에게 축제가 무슨 기쁨을 줄 수 있겠습니까!


[새김]

 

우리가 몸담은 교회죄스러우면서 거룩한 공동체로 정의되곤 합니다. 구성원인 우리가 죄스러운 존재이기는 하나, 받들어 섬기는 하느님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죄스러운 공동체이나, 거룩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하느님을 모시고 살면서 하느님처럼 거룩하고 완전하고 자비롭기 위해 노력하는 공동체입니다.

혹시 주위에서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이 왜 그래?”하는 혹평이 있더라도, 우리는 자신 있게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기 위해 성당에 다닌다.” 하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 속에는 세 부류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이 계시고, 예수님 말씀을 듣고자 세리와 죄인들이 가까이 있으며, 이 모습을 보고 투덜거리는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있습니다.

죄인들보다는, 이들과 상종을 거부했던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을 대상으로 예수님은 그 유명한 소위 탕자의 비유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의 최후 걸작이 돌아온 탕자라는 이름을 지닌 이래, 탕자인 둘째 아들에게 초점이 더욱 쏠리게 되었지만, 그러나 핵심은 아버지의 자비입니다.

 

아버지의 자비로운 마음이 없었다면 탕자인 작은아들의 회개는 물론 용서도 불가능했겠지만, 그 자비는 끝내 큰아들의 회개까지 불러일으키기에 이릅니다.

우선, 작은아들은 극한 상황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아버지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합니다. 돌아감 곧 회개의 동기는 아버지의 자비로운 마음, 용서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한편, 아버지는 분명히 떠나 있다가 돌아왔을 뿐인 아들을 죽었다가 살아온 아들로 맞아들입니다. 죽었다고 생각했다는 것은 그동안의 잘못을 잊어주심이 아니라 지어주심을 의미합니다. 잊었다가는 기억할 수 있지만, 지어버리면 기억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큰아들에게도 회개가 필요했을까요? 우리가 놓칠 수 있는 부분, 놓치고 사는 부분일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었다.” 하고 말합니다.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이 큰 선물임을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함께 있음이 더 바랄 것 없는 큰 선물이고 축복이었음을, 늘 축제였음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 망각하고 또 다른 것, 더 많은 것을 원했으니 그것이 죄, 지나친 욕심 곧 탐욕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그에 관한 언급은 없다 하더라도, 아버지의 말씀으로 큰아들은 영적인 눈을 뜰 수 있게 되었을 것입니다. 의인으로 자처하던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가슴에 새겨야 할 장면입니다.

또한 아버지를 떠나 불행, 나아가 죽음 속에 머물던 동생이 돌아왔으니, 아버지 이상으로 기뻐해야 했음에도 그러하지 못한 못난 모습에서, 아벨이 받은 하느님의 축복을 시기하여 살해한 카인의 모습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아버지의 자비는 죄인은 물론 의인이라 자처하던 사람들을 회개로 이끕니다. 세리와 죄인들은 물론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하십니다.

회개와 보속, 은총과 구원의 때인 이 사순시기에, 우리 모두 하느님의 자비를 믿고 회개의 길로 나아갑시다.

어떤 잘못이라도 하느님 자비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이라곤 돌아가는 일뿐입니다. 모래 백사장에 내 잘못을 거짓 없이 써 놓는 시간과 용기만 내면 됩니다. 하느님의 자비가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 들어와, 한 판에 말끔히 지워버릴 것입니다.

 

아울러 무한히 자비하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 주위에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지금 쉬고 있는 교우들이 회개하여 하느님의 따뜻한 품을 되찾을 수 있도록 기도하며 다가가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도웁시다!

그래서 이번 부활 대축일에 그들과 함께 기뻐하는 축제를 맞이하도록 합시다!

분명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바라시는 하느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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