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자로와 함께하는 삶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바리사이들을 향합니다. 이들 바리사이를 대상으로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를 들려주신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이 이야기가 단순한 비유 이야기, 부자와 가난한 사람에 대한 사후 보상 이야기를 넘어, 바리사이들을 겨냥한 중요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먼저 부자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마디로 호의호식했던 사람, 소유하고 있던 것을 마음껏 누리던 사람입니다. 물론 정당하게 번 재물이라면, 재물이나 재물 향유 자체가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짐작건대, 이 사람은 하느님과 대립관계에 있어 본 적도,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한 적도 없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다만 하느님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서, 모세와 예언자들의 가르침에 대해서 눈을 감고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가지고 있는 것과 그것을 누리는 데 급급한 나머지, 하느님을 보지 못했고 도움이 필요했던 (‘하느님께서 도우시다’를 의미하는 이름) 라자로를 지나쳐버렸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나아가, 지상에서의 삶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너무나도 자명한 진리까지 내다보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이 지경으로 이끈 것이 재물이었다면, 마땅히 그 굴레에서 벗어났어야 했는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느님께서 도우실 수밖에 없던 라자로를 살피는 일이었는데, 그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오늘 비유 이야기의 후반부는 모두 죽음 이후의 보상 문제를 주제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예수님이 진정 말씀하고자 하시는 바는 부자까지 포함한 모든 이의 구원입니다.
이 비유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모든 사람이, 그가 부자라면 더욱더 가지고 있는 것을 힘껏 활용하여, 이웃의 관계를 구원의 관계로 승화시킴으로써 신앙의 선조인 아브라함의 곁에 자리하기를 바라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돋보이기 때문입니다.
지상에서의 편안한 삶이 사후에도 이어지리라 믿었던 부자와 달리, 가난한 라자로는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제1독서) 신앙 자세로 현세의 고된 삶을 극복해나감으로써 영원한 행복 속에 머뭅니다.
율법을 글자 그대로 준수하기만 하면 구원이 보장된다고 믿고 있던 바리사이들과 달리, 자신을 죄인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오로지 하느님의 도우심(=라자로)에 모든 것을 내맡기며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씀에 따라 사는 삶, 늘 하느님을 뵙고 이웃을 살피는 삶으로 영원한 행복을 선물로 받게 되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분(마르 2,17)임이 다시 한번 선포됩니다. 그러니 바리사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느님 앞에 의로운 사람은 없다 하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일이며, 따라서 구원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선물임을 고백하는 일입니다.
세상과 인류 구원의 정점인 부활의 영광을 향하여, 오늘도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우리를 앞서 묵묵히 걸어가시는 주님의 뒤를 따라,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는 물론, 할 수 있다면 더 무겁게 보이는 이웃의 십자가를 조금이라도 나누어 짊어지고 걸어가는, 위대한 신앙인의 모습을 드러내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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