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로운 사람
마태오 복음의 산상설교와(마태 5-7장) 유사한 내용이 루카 복음에서도 확인되는데(루카 6,17-49), 예수님께서 이를 평지에서 설파하셨다는(루카 6,17) 점을 강조하여 평지설교라고 부릅니다.
이 두 설교는 구조나 내용 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으나, 차이점도 적지 않습니다. 아마도 두 복음서 저자는 같은 자료를 근거로 이 두 설교를 구성했을 것이며, 같은 자료를 사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러저러한 차이점을 보이는 것은, 두 저자의 독자성이나 그들이 속해 있던 공동체의 환경과 상황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두 설교를 비교해보면, 산상설교가 영적이며 내면적인 면을 치중한 반면, 평지설교는 외부적이고 사회적인 현실을 중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두 복음저자가 속해 있던 공동체는 당대의 현실 속에서 정체성의 위기를 느꼈을 것이며, 이러한 위기를 주님의 말씀으로 헤쳐나가고자 했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마태오는 유다계 그리스도인으로서 율법에 대한 지대한 관심 등 유다 색채가 짙을 수밖에 없었고, 루카는 그리스계 그리스도인으로서 (구약)성경을 모르고 있던 이방인들을 위해 보다 폭넓은 복음의 메시지, 그 가운데서도 자비와 용서의 삶을 전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하는 말씀으로 열립니다. 루카 복음에서만 발견되는 이 문구는, 마치 마태오 복음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 하는 구절처럼, 복음서는 물론 성경 전체에 꼭 한 번 언급되며, 동시에 루카 복음의 메시지를 요약해 줍니다.
이어서 자비로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소개합니다. 남을 판단하지 않는 사람, 남을 단죄하지 않는 사람, 용서하는 사람, 베푸는 사람입니다. 물론 이러한 자질을 갖추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으나, 쉽지 않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포기하거나 체념해 버리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은혜로운 적절한 기회가 찾아와도 지나쳐 버리거나 놓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되는 더욱 큰 이유는 자비로운 하느님으로부터 우리는 늘 그러한 은혜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상에서의 시간 동안, 심판과 단죄의 대상에서 제외되고, 용서와 베풂이라는 놀라운 은총의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자비하신 하느님의 자녀 됨을 드러내 보이는 길이 남을 심판하지 않고, 단죄하지 않고, 용서하고, 베푸는 일이라면, 힘들고 불가능해 보이더라도 그 길을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힘과 용기를 주실 것이며, 힘든 그만큼 보람도 기쁨도 클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의 자녀들 또는 영적인 자녀들이 나를 보고 자비하신 하느님의 모습을 배워나간다면,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우리 품에 담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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