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결단
오늘 복음 말씀을 읽다 보면, 몇몇 과격한 표현 앞에서 섬뜩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대부분이 제자들을 대상으로 한 특별한 가르침이라는 점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부담스러운 마음과 함께 이것이 진정 주님의 뜻일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습니다.
먼저 주님은 당신 제자들을 향한 사람들의 마음을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하는 약속으로 보상해 주십니다.
이 마음을 제자들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으로 분류한다면, 다음은 부정적인 마음에 관한 안타까움의 표현입니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
당신 제자들에 대해 사람들이 이렇게 대해주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그렇게는 하지 말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은, 우선 제자들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가르침은, 앞서 말씀드렸던 대로, 섬뜩하기만 합니다: 잘라 버려라, 빼 던져 버려라!
그러나 우리 가운데 예수님이 문자 그대로 잘라버리고 빼 던져 버리라는 의미에서 이러한 말씀을 하셨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손이나 발 또는 눈이 죄를 짓는 행위에서 도구로 전면에 드러나는 경우는 있어도, 몸의 지체 자체가 판단을 하여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는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든 것은 숙고해서 판단하는 주체, 곧 마음에 달려 있는 문제입니다. 오늘 복음의 잘라 버려라, 빼 던져 버려라! 하는 말씀은 결국 죄짓게 하는 마음을 던져 버리라는, 마음의 결단을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나라,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 자세에 해당할 것입니다.
세례성사 때 우리는 모두 마귀를 끊어버리겠다는 약속과 다짐을 공고히 했습니다.
집전자가 “죄의 근원이요 지배자인 마귀를 끊어버립니까?” 하고 물었을 때, 우리는 분명 “끊어 버리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문제는 그 마귀란 존재가 어떻게 다가와 우리를 유혹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미처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우리 곁에 다가와 우리를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마귀는, 어렸을 적 교리 그림책에서 보았듯이 검은 망토를 뒤집어쓰고 흉측한 몰골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무서워서라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경우 내 마음이라는 탈을 쓰고 접근하니, 방어하거나 차단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늘 깨어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 모두 당신이 마련하신 영원한 거처, 영원한 생명에 나라에 머물 수 있도록 마음의 결단을 독려하십니다.
잘라버릴 것은 잘라 버리고, 던져 버릴 것은 던져 버리겠다는 마음으로, 바라시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우리의 영원한 생명뿐인 주님의 뜻에 맞갖은 신앙생활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의미 있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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