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와 꼴찌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 가운데 그 의미를 자주 혼동하는 표현이 봉사와 섬김입니다.
봉사는 동등한 위치에서 있는 힘껏 돕는 행위를 말하며, 섬김은 자신을 낮추어, 곧 아랫사람이 되어 받들어 모시는 행위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하느님은 섬김의 대상이지 봉사의 대상은 아닌 것과 같습니다.
물론 봉사도 빼놓을 수 없는 탁월한 덕행 가운데 하나이나, 우리 신앙인의 자세는 좀 더 들어가 섬김에 이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봉사보다는 섬김을 강조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먼저 미천한 존재인 인간을 섬기는 삶을 사셨으니, 그분의 가르침에는 그렇게 힘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의를 제기할 구석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분명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관한 예고를 하셨음에도,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보기에, 부활까지 말씀하셨으니 알아들을 만도 하지 않나 생각할 수도 있으나, 수난부터 막혀버리니 죽음은 물론 부활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길에서 논쟁하였다는 사실이 이를 대변해줍니다. 정치적인 메시아에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구약시대에 메시아, 곧 기름으로 축성된 사람(=기름부음받은이)은 임금을 가리키는 매우 구체적이며 역사적인 표현이었으니(그래서 임금을 임금-메시아라 부르기도 합니다), 충분히 그럴 만도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자들을 선택하시어 말씀과 행적으로 그들을 가르쳐오신 주제 가운데 핵심은 바로 이 대목, 메시아에 대한 개념 정리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메시아는 모든 이의 꼴찌, 모든 이의 종이라는 가르침 말입니다. 이 개념 정리 속에서 메시아에게 수난과 죽음은 맞아들이고 극복해야 할 당연한 과정으로 이해됩니다.
알아듣지 못하는 제자들을 위해 예수님은 어린이 하나를, 여리디여린 존재 하나를 내세우십니다.
복음서에서 어린이가 등장하는 경우가 여러 번 있고, 그때마다 어린이가 주는 의미가 다를 수가 있으나, 오늘 말씀에서는 여린 존재, 홀로 설 수 없는 존재로서, 사람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 섬김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아무런 조건 없이 껴안아 주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자세로 이해타산 없이 당신을 받아들이기를 원하시며, 그것이 바로 당신을 보내신 성부를 받아들이는 길임을 밝혀주십니다. 물론, 이 말씀 속에는 어린이를 인격적인 개체로 인정해야 한다는 가르침도 담겨 있으며, 이는 다른 복음서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주님은 우리 모두, 어린이에게 그렇게 대하듯, 당신을 섬기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를 앞서 어린이처럼 나약한 인간을 섬기는 삶을 사셨고,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시어 수난과 죽음과 부활로 구원사업을 완성하셨으니, 이제는 우리가 주님의 바람에 화답해야 할 차례입니다.
오늘 하루, 봉사의 차원을 뛰어넘어, 섬김의 자세로 이웃을 만나는 가운데, 주님 섬김을 온 마음으로 느끼고 자랑하는 은혜로운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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