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처럼 자비로운 사람
[말씀]
■ 제1독서(1사무 26,2.7-9.12-13.22-23)
오늘 독서는 다윗이 왕위에 오르기 전 사울을 중심으로 한 적대자들의 갖은 위협에도 불구하고, 복수보다는 화해를 추구했던 인물임을 바로 보여주는 이야기 하나를 전해줍니다. 사울은 다윗을 경쟁자로 취급하고서 그를 제거하려 할 정도로 증오심에 불타 있었으나, 다윗은 하느님이 선택한 사람에 대한 존경심으로 복수의 기회를 극복함으로써 화해의 인물로 남습니다. 훗날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른 다음에도 화해와 용서를 통치 이념으로 간직할 수 있도록 성경 저자는 이를 정성스럽게 기록으로 남겨놓습니다.
■ 제2독서(1코린 15,45-49)
사도 바오로는 흙으로 빚어진 인간이 영적으로 어떻게 성장해 나가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곧 흙에서 태어난 존재임을 전제로 하면서도, 흙에 속한 아담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주님을 꾸준히 닮아가야 한다는 것이 가르침의 요지입니다. 하늘에 속한 분을 닮은 살아 있는 존재로서의 궁극적 변화는 주님의 생명에 동참하는 삶을 통해서만이 가능한 일이며, 이 삶은 바로 하느님만이 우리의 주님이시라는 고백과 함께 그분의 구원 의지가 담겨 있는 성경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삶입니다.
■ 복음(루카 6,27-38)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종종 우리 인간의 통상적인 기준이나 판단을 벗어나 충격을 주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특히 폭력에는 폭력뿐이라는 보복 논리에 빠진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가르침이나, 참 평화 정착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이는 가장 위대한 가르침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의 사랑 자체이신 그리스도는 십자가상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삶을 통해서 이 사랑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새김]
죽음 후의 상선벌악 사상이 희미했던 구약의 사람들에게 삶과 죽음은 흔히 육적이 아니라 영적인 차원에서 이해되었으며, 삶과 죽음의 기준은 늘 하느님과의 관계 문제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육적으로 살아 있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뜻을 어겨 그분과의 관계가 단절되었다면 이는 곧바로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가르침대로, 육적인 존재임을 인정하면서도 진정으로 살아 있기 위해서는 하늘에 계신 주님의 뜻을 찾고 실천함으로써 그분이 베푸시는 참 생명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숨 없이 육적인 숨은 허무하다는 가르침입니다.
육체와 영혼이 함께 숨을 쉬어 참 생명을 이 땅에서 미리 맛보기 위해서는, 다윗이 준비하고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용서와 화해의 위대한 몸짓을 본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와 죽음을 통하여 동족 유다인들과 이방인들의 화해를 이루실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시는 오늘 복음 말씀은 그래서 더욱 힘 있게 다가옵니다.
주옥같은 그 여러 말씀 가운데 단 한 마디만이라도 성심성의껏 실천해 나갈 수 있다면, 진정으로 살아 숨 쉬는 영적인 신앙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 가운데, 가장 강렬하면서도 인상적인 말씀이 바로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하는 말씀일 것입니다. 어떻게 원수를 사랑할 수 있을까? 말은 할 수 있어도,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고, 주님도 우리의 사정 모를 리 없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 속에는, 최소한 원수가 아닌 사람은 무조건 사랑해야 한다는 원칙과 함께, “너희가 자기에게 잘해 주는 이들에게만 잘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그것은 한다.” 하는 가르침에 비추어 용기 내어 시도라도 한 번 해보라는 권고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갑자기 원수를 사랑하기는 힘들어도, 그 원수를 원수가 아닌 이웃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앞세운다면, 기적 같은 일은 내게도 분명 일어날 것이며, 그때에 비로소 우리는 주님 사랑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에 다가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시작해서 멀리 있는 사람들도 사랑하는 사람, 나아가 도저히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원수 사랑까지 마음에 품고 시도하는, 하느님처럼 자비로운 사람의 길을 걸어가는 값진 시간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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