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징과 믿음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다시 만납니다. 예수님 시대의 유다교 분파로, 정치적 세력인 헤로데 당원과 열혈당원 이외에, 바리사이파와 사두가이파와 (성경에는 등장하지 않는, 쿰란 공동체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에세네파를 구별합니다.
그 가운데 분리된 자들이라는 의미의 바리사이들은 율법과 전통에 충실했던 사람들로서, 그러하지 않은 사람들과 분리된 자들로 자처했습니다.
율법과 전통에 대한 집착으로 편협한 사고를 지니고 있었지만, 대중들로부터는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었고, 그래서 지도자적인 위치를 확고하게 지킬 수 있었습니다.
한편, 이들은 부활 사상과 영혼의 불멸, 천사 또는 악령과 같은 영적인 존재를 받아들였으나, 사두가이들은 그 반대였습니다(마르 12,18; 사도 23,18 참조).
이들 바리사이의 눈에 비친 예수님은 그들이 권위를 갖고 가르쳐오고 온 힘을 다해 실천해온 율법과 전통을 무시하거나 깨뜨리시는 분으로 인식되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그들의 자리를 위협하고 영향력을 빼앗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 때문에 그분께 적의를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하기에 그들은 오늘 그분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합니다. 여기에서의 시험은 악의를 품고 궁지에 몰아넣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냅니다.
복음 전파 사업에 뛰어드시면서, 그동안 수차에 거쳐 기적을 통한 표징들을 보여주셨음에도,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한다는 것은 믿음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다는 증표입니다.
특히, 앞서서 예수님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6,30-44), 빵 일곱 개와 물고기 몇 마리로 사천 명을 배부르게 하셨음에도(8,1-10),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는 것은, 그 옛날 광야에서의 만나처럼, 하늘에서 표징이 주어질 때 비로소 예수님을 모세와 같은 예언자로 받아들이겠다는 의도로 보이나, 실은 믿음이 없음에 대한 증거, 완고한 마음의 표현일 뿐입니다.
믿음이 없는 바리사이들을 향하여, 어떠한 표징이 주어진다 해도 믿음의 기운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완고한 마음의 소유자들을 향하여, 예수님의 감정이 깊은 탄식으로 표현됩니다. 분노보다는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감정입니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 아니 듣지 않으려 하고 보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에 대한 측은지심입니다. 믿음이 없으니,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표징은 없던 믿음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있는 믿음을 다져줄 뿐입니다! 따라서 믿음만 있다면, 다시 말해서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귀와 바르게 볼 수 있는 눈만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원하는 표징은 주위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바로 좋은 표징들입니다. 마음을 열어 사람들을 만나고, 정성을 다해 일들을 처리해 나가는 가운데, 우리의 가톨릭 신앙을 더욱 다지고 펼쳐나가는 의미 있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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