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모독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들과 논쟁을 벌이시는 예수님을 봅니다.
예수님이 지금 활동하고 계신 곳이, 예루살렘에서 한참 북쪽에 위치한 갈릴래아 지방인 까닭에, 내려온보다는 올라온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아도,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나 그러하듯이, 나라와 민족의 중심지인 수도에 대한 존중심 차원에서 이렇게 표현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마귀 들린 사람을 치유하셨다는 소문을 듣고서, 이 치유는 오로지 하느님의 영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하느님의 영이 예수님을 통하여 이 치유의 기적을 이루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그분을 대상으로 더러운 영이 들렸다, 베엘제불이 들렸다, 또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모함하기 시작합니다.
성경에서 마귀 또는 사탄은 하느님과 그분 나라 건설을 반대하거나 방해하는 존재이며, 그 우두머리는 베엘제불 또는 벨리아르(2코린 6,15)라 불립니다. 그러니까 율법 학자들은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당신의 능력이 아니라, 원수의 힘을 빌리고 있다고 고발하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로 시작되는 비유로 응수하십니다.
어떤 세력이든 갈라서게 되면, 불화나 불목, 또는 분열하게 되면 버텨낼 수 없다는 너무나 상식적인 진리를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힘센 자가 통치하는 왕국을 파괴하는, 그 힘센 자를 묶어 놓는 분 곧 더욱 힘세신 분으로 당신을 소개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마귀를 쫓아내심으로써 하느님의 나라와 함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드러내십니다. 이 새 시대는 어떤 새로운 제도가 아니라, 예수님 자신의 행위로 열리는 시대입니다(특히 루카 11,20과 17,21 참조). 또 그럼으로써 사탄의 지배에 종지부를 찍으십니다.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은 숙고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신성 모독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성령 모독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신앙고백 속에 예수님은 참 인간이시며 참 하느님이신 분입니다. 예수님의 지상생활 당시에, 더욱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받아들이는 것을 신성 모독으로 확신했던 율법 학자들의 눈에, 인간으로서의 예수님의 모든 언행은 신성 모독으로 비쳤을 것이며, 결국 이 사람들은 신성 모독죄로 예수님을 유다교 법정에 세웁니다.
예수님이 참 하느님이심은 부활 사건을 통하여 완연히 드러나고 공표될 것이므로, 부활 사건 이전의 예수님께 대한 인간적 모독은 용서받을 수 있으나, 아무리 양보하고 인내한다 하더라도 예수님 안에서 성령이 활동하심을 거부하는 행위는 영원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 남게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더욱이, 이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이 제자들에 의해 전파되고 끝내 복음 저자들에 의해 기록의 단계에 접어든 시대에 와서는,
다시 말해서 부활 사건을 통하여 그분이 참 인간이셨으며 참 하느님이셨음을 더는 부정할 수 없게 된 성령의 시대에 와서는,
신성을 모독하는 자든 성령을 모독하는 자든 가릴 것 없이 영원히 용서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인식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부활 이후 곧 성령의 시대는 결정적인 시기, 회개의 마지막 때임이 선언됩니다.
우리는 지금 성령의 인도와 보호 아래 교회의 시기를 살고 있습니다.
성령이 내려주시는 힘과 지혜와 용기를 벗 삼아 사탄의 유혹을 뿌리칠 뿐만 아니라, 감히 넘보지 못하도록 경계의 벽을 두껍게 해야 할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이 정도면 됐다고 판단하는 순간, 그때부터 더 힘센 사탄의 공격이 재개될 것이며, 그동안 쌓아온 신앙의 탑 또한 허무하게 무너져내리는 아픔과 슬픔을 겪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깨어 기도하는 가운데, 사탄의 유혹을 단호히 거부하며, 이웃의 안전에도 관심을 쏟는 거룩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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