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사도
지금까지의 예수님 행적이 본격적인 복음전파 사업의 서론에 해당한다면, 이제부터 본론에 들어갑니다. 그 첫 작업이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심입니다. 열둘을 부르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십니다.
부르심의 목적은 우선,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심입니다.
다른 공관(共觀) 복음서와 마찬가지로, 마르코 복음서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예수님 곁에는 늘 제자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늘 곁에 두시어, 그들이 당신의 말씀을 직접 두 귀로 듣게 하고, 당신의 행적을 두 눈으로 직접 보게 하십니다.
바로 이들이 예수님의 뒤를 이어 귀와 눈으로 직접 듣고 본 것을 전하며, 지상 교회를 맡아 구원사업을 이어나갈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제자 양성은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었으며, 주님의 가르침 가운데 제자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는 사실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최대 역점 사업이 제자 양성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다음,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심입니다.
당신의 말씀과 행적을 귀와 눈으로 직접 듣고 보게 하신 것은, 있는 그대로 전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파견이 전제되는 대목입니다.
'파견하다'라는 동사는 구약성경에서는 예언자들의 소명과 사명을 기술할 때 사용되던 용어였으며, 신약성경에서는 오늘 복음에서처럼 무엇보다도 제자들의 소명과 사명에 적용되는 용어입니다.
사도는 그리스어로 아포스톨로스인데, 이는 ‘파견하다’를 의미하는 동사 아포스텔로에서 파생된 표현으로서, 파견된 이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사도는 예수님으로부터 파견되어 복음, 곧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도들보다 먼저 파견되신 분은, 성부로부터 세상과 인류의 구원을 위해 파견되신 분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도들의 파견 목적은 따라서 하느님의 지고의 뜻을 세상에 알리고 구현하는 일입니다.
끝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심입니다.
이 권한을 좁은 의미로 해석하여 구마(驅魔) 행위로 국한할 수도 있으나, 문맥상 넓은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마귀를 쫓아낸다는 것은 하느님 나라가 건설되고 있음을 드러내는 증거입니다. 마귀는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는 존재, 그분의 뜻과 정반대의 길을 걷도록 인간을 유혹하는 존재, 하느님 나라에서는 영원히 사라져야 할 존재입니다.
사도들에게 이 권한을 주셨다함은, 성자께서 세우시는 하느님 나라 건설에 앞장서야 할 교회가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꼭 갖추어야 할 자격을 말합니다. 특히 전례와 성사 집전을 통해서 교회는 제도로서의 교회 내에서뿐만 아니라, 그 구성원들의 마음속에 마귀적인 요소들이 자리잡을 수 없도록 늘 깨어 지켜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여 부르신 사도들은 출신과 성격과 직업이 매우 다양한, 얼핏 보기에 우리와 별반 큰 차이가 없는 매우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을 당신 교회의 큰 기둥으로 키워내셨다는 사실 앞에서, 스승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을 확신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지상에서 펼치신 기적 가운데 가장 위대한 기적이 바로 제자 양성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당신의 제자들을 위해 그러하셨던 것처럼, 사랑과 인내로 우리를 키워 하느님 나라와 어울리지 않는 요소들을 제거하는 신앙인,
나아가 하느님 나라 건설에 꼭 필요한 일꾼으로 만들어 나가시리라는 믿음으로, 힘찬 하루를 펼쳐나가시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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