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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11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25-01-12 조회수 : 42

[주님의 세례 축일] 

 
복음: 루카 3,15-16.21-22: 너는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오늘은 주님의 공현 대축일에 유다인의 왕으로 나신 그분께 엎드려 경배하였던(마태 2,11) 그분이야말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세례를 통하여 다시 한번 공적으로 선포하는 날이다. 주님의 세례 축일은 그래서 제2의 공현 축일이며 이제는 예수님 세례의 사명이 시작되는 날이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3,22). 이 말씀은 야훼의 종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이것은 오늘 이사야서의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이사 42,1)로서 야훼의 종에 관한 예언으로 예수님에게서 이 예언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고통받는 종으로서 메시아시다.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이사 42,3). 메시아는 사람들에 대한 세심한 염려와 배려, 희생과 자신을 내어놓는다. 메시아는 자신의 사명 앞에 놀라지도 않는다. 꺼져가는 심지를 살리기보다 꺼버리기 쉽고 부러진 가지를 쉽게 자르는 것을 더 좋아하는 자들의 미움을 사게 되더라도 말이다. 결국은 가난하고 순진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만,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 대사제들은 예수를 죽이려고 하였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하심과 그분의 신성을 강조하지만, 그분은 야훼의 고통받는 종으로서 나타나고 있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16절). 여기서 성령은 메시아가 부어주는 창조적이고 새롭게 변화시키는 힘을 말하며, 불이라는 것은 정화작용만이 아니라, 선악을 결정적으로 구분시켜주는 종말론적인 의미를 나타낸다. 그분은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치우시어, 알곡은 당신의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루카 3,17). 예수님의 세례는 종말론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 하느님이시지만 우리 인간과 똑같은 조건을 가지고 세례를 받으신다. 여기서부터 당신의 메시아로서의 사명, 즉 세상을 구원하는 아버지로부터 받으신 사명이 시작된다. 우리가 새롭게 변화된다는 것은 바로 자신을 낮추어 봉사하는 겸손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주님의 세례는 제시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이제 성령을 충만히 받으시고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고 해방하는 당신의 사명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므로 주님의 세례는 “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하기 위한”(마태 26,28) 십자가의 죽음에로의 긴 여정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당신의 세례를 수난과 죽음이라고 하지 않으셨던가?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루카 12,50). 
 
이것이 바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22절)로 입증되고 있다. 이사야에서 본 내용이 그렇듯이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내어주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확장해준다.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특별한 사랑은 예수님을 모든 사람과 하나가 되게 한다. 즉,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사랑이 인간을 더욱더 사랑하게 하신다. 그런데 여기서 이러한 사실, 즉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은 예수께서 “기도를 하시는데”(21절)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루카 복음에서 기도에 관한 주제들이(예: 루카 3,16; 6,12;9,28-29; 22,41) 성령과 연결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는 기도에 관한 말씀을 하시면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루카 11,13) 하신다. 사도행전에서도 성령강림절에 성령을 기다림과 기도가 연결되고 있다. 그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였다.”(사도 1,14; 4,31 참조). 성령은 바로 겸손과 기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마지막으로 알아야 할 것은 “성령과 불로”(16절) 이루어져야 할 우리의 세례는,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를 따라 이웃을 사랑하고 또 나 자신이 죽기까지 그들을 위해 봉헌하는 하느님의 종이 되도록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변화로서 그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세례의 사명은 이웃에 대한 사랑과 봉헌이다. 이것으로 우리는 하느님을 진정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 이를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죽음을 통하여 이루신 하느님 나라에 완전히 속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우리의 세례의 의미를 다시 한번 깊이 묵상하며, 우리가 참으로 하느님의 참된 종으로서 세상의 구원을 위해 우리 자신을 바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성령을 받아 하느님의 종으로 변화가 먼저 된 우리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봉사와 희생을 함으로써 가능하다. 이 성령을 충만히 받는 것은 또한 기도와 항상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또한 기도에 항구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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