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씀]
■ 제1독서(스바 3,14-18ㄱ)
기원전 7세기 중엽 활기찬 예언활동을 펼친 스바니야는 ‘주님의 날’을 새롭게 인식시켜 나간 대표적 예언자입니다. 이전까지 이스라엘 백성은 이날을 오로지 자신들을 위한 구원의 날, 환희의 날로 받아들이고 있었으나, 예언자는 이스라엘이 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면 이날은 저주의 날, 응벌의 날이 될 수밖에 없음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예언자는 또한 이 응벌의 시기를 넘어 하느님은 회개한 당신 백성에게 새 생명을 주실 것이며, 새 이스라엘은 구원의 충만함 속에 살게 되리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 제2독서(필리 4,4-7)
수인(囚人)의 몸으로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죽음의 위험까지 각오해야 했던 사도 바오로는 희망의 빛이 전혀 없어 보였던 감옥생활 속에서도 평온한 마음을 절대로 잃지 않았음을 기억하며, 이와 같은 자신의 사도적 모습을 필립피 공동체와 나누고자 합니다. 주님이 곧 오신다는 믿음으로 어떠한 고통 속에서도 희망과 기쁨을 잃지 않도록 가르칩니다. 이러한 믿음만 간직할 수 있다면 공동체의 삶은 변화될 것이며 진정한 평화를 맛볼 수 있으리라는 믿음에서입니다.
■ 복음(루카 3,10-18)
이분이 혹시 오시기로 되어 있던 메시아가 아닐까 하는 기대감 속에 자신의 설교를 경청하고 있던 청중들에게, 세례자 요한은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대단한 준비가 아니라, 각자 자신이 처한 구체적 상황 또는 직업에 걸맞은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상식적인 자세를 취할 것을 요구합니다. 요한은 그러나 이와 같은 단순한 행위 속에서 장차 메시아가 이루실 보다 근원적인 새로움의 출발을 미리 내다봅니다.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메시아는 옛 세상을 청산하고 새 세상을 여실 분이기 때문입니다.
[묵상]
이번 주일에도 우리는, 지난 주일처럼, 회개의 세례를 통해 백성들을 준비시켜 나갔던 세례자 요한,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를 다시 만납니다.
골짜기 곧 상처로 인해 깊게 패인 마음, 산과 언덕 곧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교만, 굽은 데 곧 남의 마음을 왜곡하는 비뚤어진 마음, 거친 길 곧 자기 것만 향해 내닫는 고집스러운 마음을 바로잡으라는 외침이 생생합니다.
군중이 요한에게 묻습니다.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군중은 앞서 요한으로부터 독사의 자식들로 질타당하였고, 회개의 열매를 맺으라고 촉구되었으며,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자랑 말라고 경고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은 돌들을 가지고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는 말씀으로 그들의 특권의식을 맹타한 바 있습니다.
하느님 백성으로 선택되었다는 선민(選民)의식에서 비롯된 특권의식!!!
하느님이 이스라엘의 선조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선택의 목적을 잊고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바로 당신의 축복이 모든 민족에게 두루 전파되도록 하심에,
모든 민족이 구원에 이르도록 하심에 그 목적이 있었으나(창세 12,1-3),
이러한 하느님의 구원 의지와 주어진 사명을 망각한 채 선민사상에만 빠져 허덕이고 있었으니,
이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했던 것은 참된 회개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진정한 후손이 되기 위해서는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만 했습니다.
그러기에 질문합니다.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례자 요한은 인간으로서의 본성을 다시 찾도록, 어울려 사는 사람으로서의 본분을 다시금 새기도록 독려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입고 먹는 기본적인 영역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정리하기를 촉구합니다. 최소한의 사랑을 실천하도록 일깨웁니다. 유일한 방법은 나눔과 베풂임이 선포됩니다.
다음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철저한 윤리의식과 함께 정의를 추구하는 일입니다. 세리와 군인들이 언급되고 있는 것은 하나의 예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직업자체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규정대로, 신분에 맞게 처신하라는 말씀뿐입니다.
의로운 상거래를 통한 정당한 이윤, 땀 흘려 일함으로써 얻는 정당한 소득, 이를 통한 여유 있는 생활,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물론, 우리 신앙인들은 이러한 여유로움을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나누고 베풂이 진정한 사랑의 행위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탄 준비는 그 어떤 새로운 것, 특별하고 예외적인 것에서 조바심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그저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원칙과 상식선에서 처신하고, 잘못 되었다면 바로 잡으면 된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순진하고 순수한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주님 맞이에,
우리도 그 모습으로, 어찌 보면 본래의 우리의 모습, 더불어 살기 위해 꼭 필요한 모습으로,
마음의 때는 고해성사로 닦고 의식의 때는 원칙과 상식으로 털어버리는 시기로 대림시기를 꾸며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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