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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잔치 (End-of-Life Ceremony)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3-10-12 16:19:53 조회수 : 330

사랑하는 제 어머니는 18년 전 담석 수술 중 담도암이 발견되어 큰 수술까지 받으셨지만 몇 개월 뒤 하느님 곁으로 떠나셨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이 임박해 오는 시점에서 세례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저는 어머니께 대세받기를 권했습니다. 처음에 어머니는 망설이면서 세례받기를 거부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모든 가족이 미사에 참례했습니다. 마침 그날은 세계 병자들의 날미사가 봉헌됐습니다. 고령의 신부님께서는 강론을 통해 현재의 삶이 고통스럽고 질병이 나를 힘들게 하더라도 삶은 아름다우며, 삶을 마치고 하늘나라로 가게 되면 하느님 곁에서 영원한 평화와 안식을 얻게 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는 강론에 감동을 받으셨는지 소리 없는 눈물을 계속 흘리셨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미사에 참석하신 어머니가 심경의 변화로 흔쾌히 세례를 받으리라 내심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평생 성당에 안 다니다 죽을 때 세례받는 게 염치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는 그 후 여러 날 극심한 통증으로 힘들어하셨습니다. 임종 며칠 전 어머니는 갑자기 세례를 받고 싶다.’라고 말씀하셨고, 입원 중이던 병원의 천주교 원목실에 연락해서 드디어 엘리사벳으로 다시 태어나셨습니다. 신기하게 세례받은 그날만은 통증 없이 꿀잠을 주무셨습니다. 임종 전까지 많은 친척들과 지인들이 병문안을 오셨고 작별인사를 나누셨습니다. 임종 하루 전 자녀들과 손주들의 병문안을 마지막으로, 어머니는 자신이 알고 있는 거의 모든 분을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잠자듯이 조용히 누워 계시다가 하느님 곁으로 떠나셨습니다.

 

어머니의 장례미사 장면은 아직도 영화처럼 저의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성당 앞자리에는 저희 가족 수십 명이 있었는데, 성체성사 때 저와 제 아들, 사촌오빠 가족들 몇 명만 성체를 모셨을 뿐, 대부분 가족은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장례미사에 참석했던 비신자 친지들 중 절반 이상이 세례를 받았다는 소식을 몇 년 후 듣게 되었습니다. 평생 베풀기를 좋아했던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가장 좋은 신앙을 저희에게 알려주시고 떠나셨습니다.

 

영어권 국가에서는 장례식을 “End-of-Life Ceremony”라고 표현합니다. 고인이 삶을 잘 마무리하고 하느님 곁으로 간 것을 축하해주는 자리를 의미합니다. 사람이 태어나는 순간, 즉 삶의 시작에는 많은 축하를 받습니다. 이처럼 삶의 마지막도 인생을 잘 살다 하느님 곁으로 가게 되니 축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살아있는 시간을 감사와 기도로 보내다 삶을 마무리하게 된다면, 장례식은 꼭 슬프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장례 잔치임이 분명할 것입니다.

 

글ㅣ차언명 바울라(광명 차한의원 원장소하동 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