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사순 시기 미국 뉴저지. 참담한 실패의 연속으로 속상해진 마음에 온갖 위험한 생각이 밀려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미숙 아가다 수녀님(성도미니코 선교 수녀회)의 웃음 강의를 반복해 듣고 실천하며 힘든 시간을 이겨냈고, 연주가 있어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연주를 마치고 수녀님께 감사를 전하고 싶어 팬 카페에 글을 남겼는데, 놀랍게도 바로 답글이 달렸습니다.
수녀님과 만나서 한참 이야기를 나눈 후 미국으로 돌아왔고, 몇 달 후 수녀님께 연락이 왔습니다. “내년 여름에 뭐해? 우리 강의 같이 다닐래?” 그렇게 2013년 여름, 수녀님과 함께 여러 지역을 다니며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수녀님께서는 대본에 갇혀 얼어붙은 저를 보며 “바실리오, 철저한 계획에서 오는 완벽함도 아름답지만, 아무 준비 없이 우리 안에 그리고 청중 안에 있는 선한 마음을 믿고 성령 하느님께 맡겨보는 것도 아주 짜릿하고 재미있는 경험이 될 거야. 대본을 버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듬해 이어진 독주 공연들에서 수녀님께 배운 즉흥적인 감각으로 연주할 곡과 나의 관계, 또는 그 곡이 내 삶에 직접적으로 미친 영향 등을 나누며 연주했습니다. 그리고 2022년 10월,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초대로 ‘김수환 추기경 탄생 100주년 기념 콘서트’를 맡게 되었습니다.
제가 작·편곡한 노래들을 연주하고,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연주할 때는 어린 시절 피아노 밑에 들어가 다른 친구들이 연주해주는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던 저의 추억을 관객에게 선물했습니다. 이렇게 연주를 감상하면 오로지 ‘음악과 나’만 남아있는 시간으로 음악 소리가 심장 중심까지 콱 박혀 스며드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대본 없는 강연, 그 자유로움이 ‘세상 모든 사람이 음악을 사랑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다’던 14살 소년의 꿈을 완성했습니다. 글을 마치며 수녀님께 오랜만에 연락을 드렸습니다. ‘자유로움을 향한 길로 이끌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신앙의 추억과 기억’ 코너는 교우분들의 신앙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참여방법 자세히 보기 ▶ https://www.casuwon.or.kr/info/event/88087
글ㅣ에드윈 킴 바실리오(피아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