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병원에서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중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동료 한 명이 있습니다. 당시 73세였던 그녀는, 응급실에서 풀 타임 케이스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정기건강 검진을 받다가 암 수치가 약간 높은 이상 증후군을 발견했고, 정밀검사 후 대장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병이 이미 상당히 진행된 것을 알고 통증 완화만 하기로 하고 임종 간호를 선택했습니다.
며칠 뒤 퇴근 후 동료 몇 명이 모여 노란 장미꽃 한 다발을 들고 병문안을 갔습니다. 노란 장미는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었습니다. 장미 향이 거실 가득 퍼졌고, 그 향기 안에서 그녀는 “전 재산을 병원에 기부하기로 했다.”라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모두들 놀라며 아들과 딸, 손자, 손녀들이 있는데 어떻게 그런 결정을 했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응급실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다 보니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지 못하는 이들을 많이 만났고, 의료보험이 없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그것이 다 경제적인 문제들로부터 왔던 것이라며 자신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그런 결정을 했다고 했습니다. 지금 통증 완화 치료를 받는 것도 병원과 본인의 변호사가 절차를 밟는 중이어서 시간을 벌기 위함이고, 그 절차만 끝나면 자신은 하늘나라로 편안하게 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가족들이 동의를 했느냐고 조심스럽게 묻자 그녀는 “물론”이라고 했습니다. 가족들은 모두 젊고, 경제적인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저는 인간적인 욕심으로 볼 때, ‘가족들이 그녀의 유산을 받으면 더 여유 있고 편안하게 살 텐데···’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오히려 자신의 얼마 안 되는 재산이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병원에서는 그녀의 이름을 딴 재단을 만들고, 그 재단의 목적을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응급실 방문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명시했습니다.
재산을 기부하는 절차가 끝난 후, 친구는 임종 간호를 받으며 편안하게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녀가 돌아가는 그 길에서 두 손 잡아주시며 반가이 맞아 주시지 않았을까요. 노란 장미꽃 향기가 오래오래 이곳까지 퍼지는 것 같습니다.
글ㅣ전지은 글라라(『그래도,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