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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을 향하여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2-09-01 16:27:07 조회수 : 586

언제부터인가 순교자 성월이 되면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이 땅의 수많은 순교자와 신앙의 선조들을 본받는다는 꽤 막연한 숙제가 피부로 와 닿는 답답한 느낌도 있고, 그러면서 역시 그러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갖는 작은 죄책감도 있습니다.

 

특히 이곳 남한산성 성지에 부임한 이후로는 성지에 오시는 분들에게 순교라는 엄청난주제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고, 평상시보다 조금 더 많은 순례객을 맞아야 하기에 더 바쁜 느낌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하신지요? 올해의 순교자 성월도 어김없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순교(殉敎)라는 주제가 우리에게 주는 무게감은 순교자들이 보이신 신앙의 증거가 주는 위대함에서 오는 것이지요. 그 위대함이 그분들의 후손인 우리에게 큰 영광과 모범이 되지만, 그곳으로 나아가기엔 우리의 부족함이 크기에 아마도 열려있지 못하고 스스로 닫아버림이 익숙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분들이 남기신 훌륭한 신앙의 증거는 세상이 외치는 소리에 파묻히기 쉽기에 점점 더 멀게 다가오게 되어 결국에는 내 삶과 상관없는 일들이 되기도 하는 것이지요. 그런 와중에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6)고 하시니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마치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비웃는(루카 14,29 참조)꼴이 되는 듯한 느낌은 유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순교라는 위대한 신앙의 행위는, 오히려 반대로 이런 것이 본질이 아님을 알려줍니다.

본질은 하느님과의 관계에 있습니다. 순교의 위대함과는 다른 자신의 부족함으로 스스로 닫아버리고, 내 삶과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릴수록 오직 자신만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순서를 달리해야 하는 것이지요. 자신으로 인하여 되어가지 못함이 아니라, 하느님으로 인하여 되어갈 수 있는 것. 중요한 이것을 놓치면 덜 중요한 것에 휩싸이고 참된 본()이신 분과의 관계를 놓치게 되어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이 되고, 한 닢의 은전이 되고, 집을 나가는 작은 아들이 되고, 원망하고 투덜대는 큰아들이 되고(루카 15장 참조) 말겠지요.

 

순교는 그 행위 자체의 위대함을 보기 전에 그 안에 숨어 있는 고귀한 하느님과의 관계를 보게끔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때문에 순교는 과정입니다. 눈에 보이는 결과만을 중요히 여기는 인간적인 차원에서, 이 땅의 순교자들을 통해 거룩함의 차원으로 건너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존재 자체로 거룩함을 드러내는 성지(聖地)에 방문하고 순례하며 그 거룩함에 참여해 보심이 어떠하실지요. 신앙의 끈을 다잡으려는 교우들과 친지들과 함께 성지순례도 하시며, 뜻깊은 순교자 성월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글ㅣ김유곤 테오필로 신부(남한산성 성지 전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