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전 생태적 삶을 꿈꾸는 농사 소임을 받았을 때, 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데에서 두려움을 느꼈었습니다. 물론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여정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마치 광야에 놓인 느낌이었습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길을 찾을 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나침반입니다. 당시 저에게 나침반은 바로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말씀’은 저에게 나침반이 되고 있습니다.
‘말씀’ 때문에 행복한 수도자이고 싶었습니다. 무엇을 잘하고, 무엇 때문에 행복한 수도자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 때문에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거하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생태적 삶’이라는 고급스러운 말로 저희 삶을 표현하곤 하지만, 처음에는 철저히 농부로 살았기 때문에 저희 삶에 대하여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는 어려운 일’ 정도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신앙인이면서 농부로 살 때 필요한 지표를 갖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땅을 돌보며 사는 저희에게 ‘말씀’은 더욱더 씨앗처럼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삶 안에, 식탁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감사로움을 느끼고 아름다운 것을 볼 때도, 기후위기와 코로나19와 같은 아픔에 직면할 때에도 ‘말씀’은 저희에게 길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말씀’에서 길을 찾을 때는 조급하지 않고, 비교하지도 않으며, 다만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를 묻다가도 주님의 계획 안에서 보고, 모든 의지를 내려놓게 됩니다.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나침반으로 삼는다지만, ‘말씀’에 귀 기울이고, ‘말씀’을 마음에 담고 살다 보면, 문득 그 ‘말씀’이 우리 안에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말씀’이 자기 삶 안에 이루어지도록 고백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오늘도 우리는 살아계신 하느님을 뵐 수 있는 것입니다.
글ㅣ조경자 마리 가르멜 수녀(노틀담 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