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 정신과 생태적 회개: 근원적 전환의 길
생태 위기의 뿌리에 “강박적”이고 “집착적”인 소비주의가 있습니다(<찬미받으소서> 203항). 성장의 이름으로 생산과 유통과 소비가 서로를 부추기는 세상의 근원적 전환은 우리가 먼저 변해야만 가능합니다(202항). “타자를 향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우리는 “피조물들의 본질적 가치”와 “다른 이들을 위한 배려”를 존중하는 “새로운 길”에 나설 수 있습니다(208, 205항).
성경의 안식일 전통에는 ‘자기 관조’와 ‘타자 배려’의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안식은 “관상하는 안식”입니다(237항). 우리가 하느님의 안식에 참여하여(탈출 20,11) 삶을 성찰할 때, 안식은 “비생산적이며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일구고 돌보는” 노동의 의미를 깨달아 “공허한 행동주의”와 “배타적 개인적 이득”만을 추구하는 “끝없는 탐욕과 고립감”을 방지해줍니다(237항). 이렇게 안식은 우리에게 축복이자 거룩한 시간이 됩니다(창세 2,3).
안식일의 배경인 출애굽은 ‘해방’이 안식일 정신임을 보여줍니다(신명 5,15). 안식일은 당시의 사회적 약자인 “아들과 딸, 남종과 여종, 이방인”에게 최소한의 존엄과 평등을 보장합니다. “소와 나귀, 집짐승”에게도 적용되는 안식일 계명은 모든 피조물의 존중과 돌봄을 요구합니다. 안식년은 땅을 묵히는 ‘휴경’으로 땅의 휴식을 보장합니다(레위 25,2-7). 안식년의 소출은 모두의 것입니다. 희년은 빚 탕감과 땅 무르기를 통한 해방과 원상회복을 꾀합니다(레위 25,10-13). 안식년과 희년은 이웃과 지구와의 관계에서 “균형과 공정”을 보장하고, “땅의 결실”을 모두에게 돌려 창조질서의 회복을 꾀합니다(71항).
자신과 타자를 위해 일을 ‘멈추는’ 안식은 ‘자발적 자기 제한’의 정신으로 집약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자발적 자기 제한의 모범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육화와 십자가라는 ‘자기 비움’(필리 2,6-8)은 자기 제한의 절정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주님의 은혜로운 해”인 희년을 선포했던 예수의 삶(루카 4,18-19)은 육화의 충실한 지속이었으며 십자가 죽음으로 귀결되었습니다.
예수의 삶에 자신을 조율하는 그리스도인의 회개는 예수님을 본받아 자발적 자기 제한을 기꺼이 수용하는 “생태적 회개”입니다(217항). 생태적 회개는 소유와 소비가 자랑인 문화에서 “적은 것이 많은 것”이라는 확신으로(222항), 단순과 절제와 검약의 삶으로 구현됩니다. 우리가 안식일 정신으로 주일을 지내며 우리 자신을 변화시킨다면, 오늘날의 폭력적 소비문화는 “서로를 돌보는 작은 몸짓”에서 비롯되는 “돌봄의 문화”에 차츰 자리를 내줄 것입니다(231항). 근원적 전환의 시작입니다.
글 | 조현철 프란치스코 신부(예수회, 서강대 교수, 녹색연합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