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더 낫다.'라는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토마스 사도에게 너무나 잘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토마스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마치 유령을 본 것처럼 당혹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상처에 손가락을 대어 보고선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분이 유령이 아니라 참으로 부활하신 주님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런 토마스를 향해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이는 토마스의 완고한 마음을 질책하시는 것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저는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미소를 바라보았습니다. 당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된 제자를 향해 장난 어린 농담을 던지시는 예수님, 그분의 인자한 미소가 생생히 떠올랐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된 토마스. 그제야 그의 마음 안에 평화가 밀려옵니다. 예수님을 잃고 몸을 숨기며 방황하던 나날들, 예수님을 지켜드리지 못했다는 죄책감, 예수님을 향한 자신의 믿음이 전부 거짓이었다는 절망감. 이제 토마스는 그 모든 짐을 내려놓고 기쁨으로 가득 찹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자신의 선택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음을 고백합니다.
토마스의 부활 체험은 연약한 우리에게 희망으로 다가옵니다. 하느님을 외면하고 도망치는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다가오시어 당신의 상처를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상처 안으로 들어가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을, 부활하신 주님처럼 우리 역시 새롭게 거듭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은 주님께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오직 하나, 우리가 당신의 상처 안으로 들어가는 것뿐입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가 우리 안에 있습니다.
평화를 얻기 위해 우리는 주님의 상처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분의 상처 안에서 우리는 새롭게 태어나고 참된 평화를 얻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