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났을 때, 유대철(1826~1839)의 나이는 겨우 열네 살이었습니다. 유대철은 조선 땅에 천주교 성직자를 모셔 왔던 역관(譯官) 유진길 성인의 아들입니다. 아버지는 ‘천주교인’이라는 죄명으로 체포됐는데, 어린 유대철은 감옥에 갇힌 아버지와 교우들을 보고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이대로 살기보다는 감옥에 있는 교우들처럼 신앙을 증거하고 싶었습니다.
관청에 찾아간 유대철은 자신이 천주교인임을 밝혔습니다. 유대철에게 가족 상황을 물은 관원은 유대철이 감옥에 있는 유진길의 아들임을 알고는 그를 체포했습니다. 어린 유대철에게도 신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유대철의 입에서 ‘배교한다.’라는 말이 나오도록 잔인하게 고문하고 반대로 타이르기도 했습니다. 고문하던 형리가 혹독한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담뱃대로 유대철의 넓적다리를 강하게 내려쳤습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형리가 “이래도 배교하지 않겠느냐!”라고 묻자 유대철은 “이렇게 한다고 해서 배교할 것 같소?”라고 대답했습니다. 형리는 부젓가락으로 시뻘겋게 달궈진 숯덩어리를 들고는 유대철에게 말했습니다. “입을 벌려라! 네 입에 이 숯덩이를 집어넣겠다!” 유대철은 서슴없이 입을 ‘크게’ 벌렸습니다. 형리는 놀라 뒤로 물러섰습니다. 이를 보고 있던 한 교우가 유대철에게 말했습니다. “이런 형벌은 아무것도 아니다. 더 큰 형벌이 너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자 유대철이 “저도 알아요. 그것은 쌀 한 알을 한 말에 비기는 것과 같을거예요.”라고 했습니다. 유대철은 형리에게 수없이 매를 맞다가 그만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교우들이 애를 써서 그의 정신이 들게 했습니다. 그러자 정신을 차린 유대철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런 것으로는 죽지 않아요.”라고 말하며 오히려 교우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어린 유대철에게 가해진 형벌은 실로 가혹했습니다. 열네 번의 형벌, 백여 대의 매질 그리고 마흔 대의 치도곤(볼기를 치는 곤장형)을 맞아 유대철의 몸은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되었습니다. 살은 헤어지고 뼈는 튀어나왔습니다. 그런데도 유대철은 ‘웃는 모습’이었습니다. 형리는 유대철이 자신을 비웃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유대철은 자신의 살점을 떼어서 형리에게 던졌습니다. 그러자 형리는 놀라 뒤로 자빠졌습니다. 형리는 유대철을 매로 죽일 수 없음을 깨닫고 다른 방법을 이용해 ‘몰래’ 죽이기로 했습니다. 어린애를 공개적으로 죽이면 백성들이 반발할까 봐 감옥에서 죽이기로 한 것입니다. 형리는 유대철의 몸을 꼭 붙들고 목에 노끈을 단단히 감았습니다. 그러곤 바짝 조였습니다. 결국 유대철은 열네 살의 어린 나이에 순교했습니다.
“유대철 베드로는
조선의 가장 훌륭한 순교자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파리외방전교회 아드리앙 로네·폴 데통브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