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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5-04-11 09:25:49 조회수 : 93

기도하면서 때로 평안함이나 고요함이 아니라, 내 안에 자리한 미움과 분노를 대면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나에게 손해를 끼쳤거나 모욕했던 이가 생각날 때, 잘못하였음에도 아무런 사과를 하지 않았던 이가 생각날 때, 기도는 어느덧 주님께 드리는 탄원이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주님, 저는 저 사람이 너무 밉습니다. 어떻게 저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하면서 말입니다. 이렇게 스스로 극복하지 못한 상처와 감정은 스멀스멀 감정의 밑바닥에서 올라오곤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우리에게 ‘일흔 번씩 일흔일곱 번까지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이러한 주님의 말씀은 내 사정이나 상처를 이해해 주시지 않는 것 같아 야속한 마음마저 듭니다.


그 와중에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우리와 비교하여 절대 뒤지지 않는 고난과 부당함을 당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람들이 당신을 모욕하고, 매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을 때 예수님은 그 흔한 원망의 말, 자그마한 저주의 말 한마디를 입에 담으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입에서 들리는 말은 미움이나 분노의 말이 아니라, 당신을 외면하고 핍박하는 이들을 향한 용서의 말이었습니다. 물론, ‘당신께서는 하느님이시니 쉬이 용서 하시는 거지요!’라고 주님께 볼멘소리를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이라고 하신들 당신께서 숱하게 기적을 베풀었던 사람들에게, 당신을 믿고 따르던 제자들에게 외면당하시고 배신당하는 체험이 ‘하느님이시니까’ 한 마디로 넘어갈 일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모든 것을 감내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당신의 용서 앞에서 우리가 할 말이 없도록 하시기 위함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의 용서는 당신의 원수에게만이 아니라 애초부터 미움과 분노를 품은 우리까지 포함한 모든 이를 위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옆에 당신과 함께 못 박혔던 죄수를 위로하셨던 것처럼, 예수님의 용서는 당신의 공생활에서 보여주셨던 것과 같이 가난하고, 부족하고, 죄 지은 이들을 향했던 애정어린 눈빛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문제 때문에 고통받을 때, 미움과 분노 때문에 힘들어할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하시기 위해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때론 우리가 죄로 인하여 다른 이와 예수님의 마음에 못을 박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런 우리 또한 용서하시기 위해 다가오십니다. 주님의 용서와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원수들만이 아니라 바로 우리 또한 매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사실이 우리의 구체적인 현실 안에서 우리가 왜 용서해야 하는지, 어떻게 용서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주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기도를 오늘 함께 되새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를 비롯하여 특별히 지금 고통 중에 있는 이들, 용서와 미움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들에게 주님의 사랑이 닿기를 청하면서 말입니다. 그 체험이 이 성주간의 시작에 우리 모두의 삶 안에서 주님의 사랑을 싹트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