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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손가락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5-04-04 09:59:25 조회수 : 35

신학생 시절, 오늘의 복음 말씀을 두고 다른 신학생들과 많은 얘기를 나눴습니다. ‘과연 예수님께서 땅바닥에 쓰신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다시 한번 복음을 읽고 예수님께서 땅바닥에 쓰셨던 것은 무엇이었을지 생각해 보는 것도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 복음 중 예수님께서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시는 장면에서 하느님의 ‘손가락’이 떠올랐습니다. 하느님의 손가락은 어디에서 등장할까요? “하느님께서는 시나이 산에서 모세와 말씀을 다 하신 다음, 당신 손가락으로 쓰신, 돌로 된 두 증언판을 그에게 주셨다”(탈출 31,18). 구약의 하느님께서 당신 손가락으로 쓰시는 모습과 신약의 예수님께서 땅에 무엇인가 쓰시는 모습이 함께 연상됩니다. 하지만 이 두 모습은 성격이 다른 걸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두 증언판은 백성들이 지켜야 할 법이 적힌 것이었습니다. 그 법을 지키지 않았을 때, 구약의 하느님은 매우 무섭게 말씀하십니다. “자기 백성에게서 잘려 나갈 것이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누군가를 내치기 위해 증언판에 '지켜야 할 법'들을 적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구약의 백성에게 법을 규정해 주신 까닭은 당신의 백성들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사랑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지나며, 하느님의 계명은 사랑이 목적이 아닌, 단죄의 목적으로 변질되어 갔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이 대표적이죠. 

그들은 오늘 한 여자를 자기들 공동체에서 잘라 버리기 위해 예수님께 데리고 옵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손가락으로 쓰셨던 그 계명을 언급하며, 한 여인을 죽이는 데 합당한 이유를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성부와 본질이 같으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손가락으로 곧 하느님과 같은 손가락으로 다시 한번 무언가를 쓰십니다. 돌판은 아니지만, 땅에 쓰셔서 모든 이가 보게끔 하십니다. 그럼으로써 돌로 된 그들의 마음에 하느님의 손가락이 닿게 하십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땅에 무언가를 두 번 쓰신 이유는, 한 번은 옛 계약인 하느님의 계명을, 다른 하나는 새로운 계약인 당신의 계명을 쓰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 계명은 바로 사랑의 계명, 용서의 계명입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얼마 남지 않은 사순 시기. 남을 단죄하는 것이 아닌, 더욱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님께 청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