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여름, 아는 수녀님의 초대를 받아 독일 파더본 (Paderborn)에 위치한 빈센트회 수녀원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집이었습니다. 잘 가꿔진 정원에선 수녀님들의 성실함이 엿보였고,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지만 여전히 견고한 가구들에선 수녀님들이 얼마나 검소하게 물건들을 잘 관리하며 살아오셨는지 알 수가 있었습니다. 성당에 놓인 낡은 성경과 묵주에선 영성(靈性)의 향기가 풍겼고, 손님방 탁자 위에 놓인 예쁜 물컵과 쿠키 몇 조각에선 손님을 향한 세심한 배려도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저의 눈길을 끈 것은 수녀원 곳곳에 앉아 있던 ‘낯선’ 사람들이었습니다. 처음으로 그 수녀원을 방문한 저에게 누가 낯설지 않겠냐마는 그분들은 특별히 낯설었습니다. 어딘가 차가웠고 많이 지쳐 보였습니다. 나중에 수녀님께 여쭈었더니 우크라이나에서 온 난민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그분들의 낯선 모습이 그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사실은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중이었다는 것을요.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속보를 접하였을 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제3차 세계대전으로 번지면 어쩌나 걱정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뉴스에 등장하는 빈도도 줄고, 코로나 때와는 달리 제게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전쟁으로 인한 불편함이 없으니 그 심각성을 잊고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피난 중이었고 그렇게 ‘낯선’ 모습으로 저의 주위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 수녀원에서 보았던 우크라이나 난민들의 ‘낯선’ 모습이 다시금 떠오른 것은 얼마 전 보았던 뉴스 속 한 장면 때문이었습니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와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가 종전(終戰)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었는데 보기에 불편하더군요. ‘당신은 우리에게 감사해야 한다.’ ‘이런 자리에 입고 올 양복도 없는가.’ 앞뒤 맥락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그러한 교양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마치 힘을 가진 자들이 절박한 한 사람을 윽박지르는 듯하였습니다. 수백만의 생명을 책임져야 할 지도자의 모습은 그날따라 유독 더 초라하고 힘들어 보였습니다.
전쟁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인간이 내릴 수 있는 가장 멍청한 결정입니다. 우리 가톨릭 교회는 전쟁은 재앙이고, 결코 국가 간에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길이 아니라고 천명(闡明)합니다. 하지만 교회의 호소를 경청하지 않는 세상은 여전히 전쟁에 몰두합니다.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입니다. 전쟁으로 고통받는 그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더 이상 ‘낯선’ 이웃으로 살게 두지 않는 것입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평화를 외쳐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희년은 ‘화해’의 해입니다. 전쟁으로 고통받는 우리의 이웃들을 기억하며 하느님께 평화와 화해의 은총을 청합시다.